보고 싶은 잡스 아저씨

by Ann

ㅣ8/30 (화)


여자 셋이 올망졸망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서 이번에 선정한 책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독서 모임은 이런 게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게 됨으로써 편식하지 않는 독서를 할 수가 있다는 것. 남자 멤버가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헤헤.


단편인데 그것들이 모두 연결이 되어 있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이런 단편소설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아주 오래된 예능 프로그램인 <테마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달까. (요즘 아이들은 모를 전설의 예능 프로그램)


이 책의 어떤 한 구절을 읽다가 순간적으로 어떤 상상에 빠지게 되었다.


올리브가 일어서서 햇살에 따뜻해진 책상을 손으로 훑는다.



이 문장을 읽자 불현듯 내가 바라고 있던 미래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다. 햇살이 내 책상을 따뜻하게 달구는 한낮, 나는 짙고 두껍고 넓은 책상에 손을 얹고 창밖을 내려다본다. 나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그 책상은 결혼할 때 남편이 나를 위해 직접 준비해 준 책상이었다. 상상 속의 나는 굉장히 행복하고 나른해 보였다.


이 장면이 어떤 준비 과정도 없이 한 번에, 초간단 텐트가 공중에서 한 번에 펼쳐지듯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 내 무의식 속에서 내가 늘 꿈꿔왔던 장면이었나 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다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앤과 다시 만났다. 집에 있는 DVD도 다시 보고 있다. 앤을 다시 보니 현재 내가 좋아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앤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순수함을 유지하며 사는 캐릭터들. 앤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캐릭터의 원형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도 빨리 에세이를 써야겠다.






아이폰 7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왔다. 여러 가지 변화들이 눈에 띈다. 애플의 제품들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지금도 좋아해 왔는데 역시 스티브 잡스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진다. 아이폰3, 4 이후의 변화가 계속 아쉽다. 맥북도 마찬가지. 그런 아쉬움에 사두고 찔끔찔끔 읽어왔던 <스티브 잡스>를 다시 꺼내 읽었다.


맥킨토시가 등장하기 전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잡스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남자로서, 친구로서 정말 최악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이를 가진 브레넌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이 사람은 소시오패스가 분명해'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셜록 캐릭터를 보고 있는 것 같달까. 자기 자신과 사건 이외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 말이다.



"한 번은 제가 스티브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네 말이 진실이란 걸 너도 잘 알잖아!'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는 어린애를 안은 나를 법정으로 불러내서 내가 문란한 여자이고 따라서 얼마든지 아기 아버지가 다른 남자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읽어나갈수록 그는 인생에서 선택과 집중을 아주 제대로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겐 컴퓨터뿐이었다. 행복한 가정,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등 다 버리고 최고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목표였다. 남자 친구, 남편, 친구로선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제품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소비자의 입장에선 그를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그의 냉정하고 철없는 행동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손가락질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사랑받는 것 대신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을 선택했고, 소비자는 그런 그의 선택과 희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함에 있어서 전혀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맥킨토시가 등장하면서부터 이 책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잡스의 디자인 철학이 특히 재밌다. 읽는 동안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점점 더 잡스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음에, 그런 사람이 만든 제품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음이 안타깝다.



무제.png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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