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오후다. 긴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 주는 나른하고 편안하고 설레는 여유가 나를 온통 감싸고 있다. 내 귀에서는 보사노바 음악이 속삭인다. 아이튠즈가 추천해준 보사노바 베스트 컬렉션이다. 보사노바가 이 여유를 함께 즐겨주고 있다. 음악 고르기 귀찮을 때 딱이다.
혼자인 나는 연휴 동안 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상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우리 집이 아닌 곳에 가서 낯선 공기,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로부터 불편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부모님도 언제부턴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으신다. 내가 겪을 불편함을 아시는 걸까? 그런 배려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받고 싶지 않은 질문들, 듣고 싶지 않은 걱정들이 싫으실 거다. 그래서 그냥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된다. 그 긴 연휴 동안, 그 긴 연휴가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요즘엔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 여행으로 대체하는 가족들이 많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 증후군, 며느리들의 반란, 연휴 우울증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많이 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런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이 아직까지는 많겠지만 지금이 과도기적 시기인 것 같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행복한 사회가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는 거니까.
어김없이 나는 곧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전과는 기분이 다르다. 마음의 여유가 나의 시간을 아주 길게 늘려준 기분이다. 이런 게 상대성 이론이구나. 전에 느끼던 시간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연휴 동안 볼 책들, 쓸 글들, 볼 영화들을 생각하니 배시시 절로 웃음이 세어 나온다. 무려 5년 만의 연휴니까. 2011년 일을 시작하고 연휴에 쉬어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남들처럼 산다는 게, 그저 평범하게 산다는 게 부러울 때가 많다. 남들이 긴 연휴에 설레 할 때, 쉬는 날이 주말과 겹쳐 아쉬워할 때 별 거 아니지만 뭔가 함께 설레 하고 아쉬워할 수 없다는 게 가끔 속상할 때도 있었다.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막상 그 안에 있었다면 몰랐을 감정일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평범한 것을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꿈꾸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특별한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도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여유와 행복과 설렘은 평범하지 않았던 것에서 오는 소중한 감정들이다. 남들 쉴 때 쉬지 않았던, 남들 시집갈 때 가지 않았던(아니, 못 갔던) 것들이 준 선물 같은 것.
오늘은 평소 내가 치를 떨고 싫어했던 사람들에게 조차 웃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너그러운 사람처럼 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카페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짜증 섞인 비명을 지르는 아기에게도 화가 나지 않는 걸 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