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다가오고 있고, 10월이 가까워지는 만큼 바람도 차가워지고 있다. 분명 열흘 전과는 다른 온도의 바람이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느껴본 적이 있는 바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보는 천장이 보인다. 그리고 난 속으로 어김없이 생각한다. 또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구나. 어젯밤에 샤워를 했는데 잠깐 누웠다가 일어나 또 샤워를 해야 하고, 또 옷을 입어야 하고, 또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출근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보는 얼굴들을 보고 매일 하는 일을 한다.
'아, 지루하다. 하루가 정말 길구나......'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다 똑같은 것 같은 하루하루를 느끼며 '권태'라는 단어를 확인한다. 아, 이게 권태구나. 뭔가 새로운 것 없을까? 좀 더 자극이 될만한 일이 없을까? 재밌는 일 없을까? 권태에 완전히 휩싸여 낙지처럼 흐물흐물해진 채로 밥을 먹었다. 밥 먹는 것도 참 지루하구나 하면서.
그러다 된통 체했다. 다리는 진짜 낙지처럼 되어 후들거렸고, 거울로 본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먹은 것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내 속에서 난리법석이었다. 몸은 추운데 머릿속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이 됐든 빨리 아무나 먼저 나와라 제발 제발.
성질 급한 놈이 재빨리 나왔다. 그렇게 처리를 하고 난 거의 기어가 소파에 누웠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속은 여전히 매스꺼웠다. 그래도 처음보단 훨씬 나았다. 얼굴의 눈, 코, 입은 저절로 한 곳으로 모였다. 오만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잠이 살짝 들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잃은 거였을까. 암튼 10분 정도 후에 눈을 떴다. 매스꺼움은 좀 잦아든 것 같았다. 일어서면 또 모를 일이어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아주 약간 속이 울렁거리긴 했지만 밖으로 나오겠다는 아우성은 없었다. 서서히 몸의 고통들이 사라져 갔고, 속은 편안해져 갔다. 내 얼굴에서 오만상도 어느새 사라졌다.
출근 준비 중 겪은 재앙이라 나는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출근 준비는 어제의 출근 준비가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잠깐의 고통이 나를 스치고 간 후의 일상은 내가 지루해하던 그 일상이 아니었다. 권태? 그게 뭔가. 그건 사치일 뿐. 개나 줘 버려!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사실 이런 감정은 처음 느끼는 게 아니다. 아프고 난 후에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아프지 않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이번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갔다. 아픈 게 계기가 되어 조금 더 나아간 다른 생각을 했다.
"아프지 않은 일상이 참 소중하구나. 그리고 사실 매일 똑같은 하루란 없는 건데."
나의 일상들 중 단 1초도 같은 시간은 없다. 2016년 9월 23일 8시 31분 30초와 31초는 엄연히 다르다. 모든 순간들이 다 처음 맞이하는 시간들, 순간들이다. 아주 미세한 만큼이지만 다른 순간순간들임을 난 눈치채지 못하고 아니 눈치채지 않으려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결코 어제와 같지 않은 순간들이다.
연애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겪는 권태도 마찬가지였다. 만날 때마다 "뭐하지? 오늘은 뭐할까? 또 영화 봐?"하면서 권태로움을 느끼곤 했는데 사실 매번 같은 영화가 아니었고, 매번 같은 날씨가 아니었고, 매번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다시 나에게 주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내 곁에 아무도 없고, 그때 권태를 느꼈던 모든 것들은 다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으니까.
사실 권태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똑같다고 느끼는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일 뿐.
아프니까 성숙해진다. 어리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