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을 읽고.
모모의 여생은 어땠을까. 모모는 어떤 여생을 살다 갔을까. 그의 여생이 전반적으로 행복했길 바랐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간절히 그렇게 바랐다. 어떤 사람은 그의 여생이 로자 아줌마와 혹은 벨빌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가난은 벗어나기가 힘드니까. 자신이 선택한 적이 없는 배경을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안다. 알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난 희망을 봤다. 아마 내가 그걸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모모의 여생이 그래도 행복했을 거라고 낙관하는 이유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소설 곳곳에서 모모의 따뜻한 면모들이 드러나는데 사랑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차갑지만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은 따뜻하다.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모모를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고 돌봐주었던 로자 아줌마, 모모와 자주 진지한 얘기를 나누곤 했던 하밀 아저씨, 모모에게 가끔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줬던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 모모의 이야기에 정성스럽게 귀 기울여주던 나딘 아줌마 등등 많은 사람들이 모모에게 사랑을 주었다. 모모는 그런 사랑으로 인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랍인이라는 인종, 매춘부의 아들, 정신병자 아버지, 매춘부였던 수양 엄마(로자 아줌마), 또 자신이 가장 의지했던 사람의 죽음 등 모모의 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든 어마어마한 일들이 그에게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그가 내뱉었던 한 마디는 그에게 그것들을 극복해 낼 힘이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 힘은 그가 받은 사랑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여생은 행복했을 거라고. 적어도 우리의 예상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