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그리운 사람

by Ann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즉 지금은 볼 수 없는 친구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 사람이 그때의 그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행복하고 즐겁고 풋풋한 기억들이 떠올라 좋다. 결국 지금은 이렇게 볼 수 없는 사람이 된 건 안타깝지만 사람의 인연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괜찮다.


여드름 꽃이 얼굴을 수 놓고 굴러가는 낙엽에 울고 웃던 그때 만났던 그 사람. 내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순수하게 좋아했던 그 사람. 아직도 그때의 그 사람을 그리워하게 하는 그 사람.


공부하고 있는 독서실 앞에 먹을 거 싸들고 찾아가 밴치에 앉아서 깔깔거리며 함께 먹고, 그 친구 좋아하는 여자 얘기 들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 얘기도 들어주고, 나 늦잠 자서 HR시간 지각했을 땐 그 친구가 나 대신 나 아프다고 거짓말 하고 출석체크도 해주고, 저녁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 통화하다가 학교에서 다클서클 가득한 눈을 해가지고 만나기도 했다.


나중에 자기가 검사가 되면 꼭 양복 한 벌 사 달라고 했던 것도 성인이 되면 꼭 집 얻어서 룸메이트 하자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참 순진했다. 그렇게 될 리가 없는데. 나는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었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말을 해도 잘 알아주는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가 정말 편했다. 소울 메이트라는 단어를 알게 됐을 때 난 제일 먼저 그 친구를 떠올렸었다.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 수학학원에서였지만 친해진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우린 알고 보니 같은 고등학교였다. 그 친구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좋아했고, 그 친구와 잘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나를 만나러 왔었다. 아직도 그때 그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검은색 모자에 회색 후드티,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던 그 친구. 우린 배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비가 왔었다.


많은 것이 잘 맞는 친구였다. 그래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였다. 나에게 그 많은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훌쩍 나를 떠났다. 너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될 거야 라는 문구의 메일만 보내 놓고. 자기도 나랑 똑같은 나이이면서.


여전히 난 그 친구가 왜 갑자기 나를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때도 그 이유를 듣지는 못했다. 한동안은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궁금해지지 않게 됐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만난 그 사람은 그 친구가 아니었다. 내가 변한 건지 그 친구가 변한 건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둘 다 변해버려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낯설었다. 단지 흘러간 세월이 주는 낯설음이 아니었다. 그냥 다른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난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그 친구만 떠올린다. 그 사람과는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다. 나만 가지고 있는 내 추억 속의 친구니까.


오늘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나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 그립고 가장 나답던 시절이 그립고 그 안에 함께했던 그 친구가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모모의 여생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