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사라져가는 기억

by Ann

2007년부터 써 왔던 영화에 대한 나의 일기를 주욱 다시 봤다. 다시 읽으면서 신기했다. 어떻게 보고 이렇게 글까지 썼던 영화가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할 수가 있을까.


영화의 제목도 생소하고, 감독의 이름도 생소하고, 어떤 영화는 내용 자체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보긴 본 것 같은데 그 어떤 장면도 저절로 떠오르지 않는 영화도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과거의 나는 봤다고 흔적을 남겨놨는데 현재의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기억 상실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누구...세요?


영화 일기 속에 불쑥불쑥 등장한 그의 이야기도 낯설었다. 그 순간들에 그가 있었다는 것이, 내가 그의 사람이었고, 그가 나의 사람이었다는 그 상황 자체가 낯설었다. 분명 그 영화들을 함께 봤고, 그 영화들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눴을 텐데. 기억해내려고 할수록 나는 자꾸 거짓말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기억은 사라졌다. 부분적으로는 남아있지만 그것도 선명하진 않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내 머리,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본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때 그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동, 그와 얘기 나누던 행복했던 감정의 조각들은 먼지가 쌓이듯 나의 어딘가에 사뿐히 꾸준히 내려앉아 두툼하게 쌓여 나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된 그것들은 이렇게 나를 느끼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쓰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내 기억 속에서 계속 사라져가고 있는 기억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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