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해피엔딩이길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고

by Ann


이 영화를 본 날의 나의 하루는 홍상수 영화 속 같았다. 점심을 먹은 황평집이라는 닭찜 가게도, 그곳에서 우연히 한 배우를 보게 된 것도, 스타벅스에서 일어난 이상하게 꼬여버린 주문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그 영화를 보고 나와 간 필동 해물집의 분위기도, 그 집에서 틀어 놓은 9번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도.





그의 영화는 이상하게 꼬이거나 우화 같은 일상을 떠올리게 하고, 평범하다 못해 허름한 장소에 이상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그날 나의 하루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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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꽤나 밝고, 귀엽기까지 했다. 유머가 많아지고 질척거리는 것들이 사라졌다. 이 영화를 보면서 꽤 많이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영화의 엔딩도 얼핏 보면 굉장히 달달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민정(이유영)과 영수(김주혁)가 자고 일어나 달고 시원한 수박을 엄청 맛있게 먹는데 그 시원함과 달콤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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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 장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잠들기 전까지 계속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과연 해피엔딩일까? 아닐까?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눈에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고, 다시 똑같은 상황을 반복할 것 같았다. 영수가 약간 바뀐 듯 보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뀔까?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난 후 대부분 헤어지는 이유는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내 눈에는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관계는 '모름'에서 시작한다. 서로 알아가면서 잘 맞는 부분들 혹은 끌리는 부분들을 발견하고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남녀 관계일 경우 남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바로 그 시절이 여성에게는 참 행복한 시절이다. 아마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여성에게 가장 정성을 들이는 시기가 바로 그 시기일 테니 말이다. 물론 그것만이 연애가 주는 행복의 조건은 아니지만.





영수도 그랬을 것이다. 민정을 처음 만났을 때. 영수가 훗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친구들의 말은 믿으면서 자신의 말은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과연 영수를 사귀었을까? 민정이 마치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영수를 까맣게 잊었으니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영수는 또다시 그녀에게 구애의 말들을 내뱉는다. 있는 그대로의 민정을 사랑하겠다고. 두 사람이 헤어져 있는 동안 영수도 많이 반성하고 성장한 듯 보이긴 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그 말은 과연 지켜질까. 두 사람은 전과 다른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옵션이 있다. 민정이 영수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는데 그녀가 진짜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기억을 못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진짜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거라면 두 사람의 관계는 똑같은 이유로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녀가 다 기억을 하고 있지만 기억하지 못 하는 척 연기하는 것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녀 스스로도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면 조금은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영수와 민정 둘 다 인정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난 참 사람에 대해, 연애에 대해 기대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없어진 것 같다. 기대는 그 크기만큼 사람을 실망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상대의 말이 어디까지나 그 순간 그 자체의 마음이지 지속 가능하다는 확신은 없다는 것, 언젠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니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아니까.





그래도 영화를 만든 사람은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길 바란다. 영화의 매력 중에 하나는 대리 만족을 시켜준다는 거니까. 두 사람의 그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돌이켜봤을 때 씁쓸해지는 모습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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