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을 보고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어떤 삶을 사는지도 일체 모르고, 심지어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단지 스크린으로 맞닥뜨렸을 뿐인데, 그의 거대한 매력에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만 했던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무엇에서, 도대체 무엇에서 나는 그런 매력을 느꼈고, 그는 대체 어떻게 그런 매력을 풍기다 못해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가.
나는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를 잘 몰랐다. 그저 그가 최근에 맡았던 역할들이 좀 특이해서 주목을 받아 그의 존재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기사 속 사진의 그는, 작은 모니터 화면 속 또 작은 예고편 속의 그는 나에게 그저 비슷비슷한 유명한 외국 배우일 뿐이었다. 그의 연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작은 화면 속에서는 그의 눈빛을 들여다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에 영화관에서 본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의 그 눈빛 같은 건 결코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맥스 3D 화면 속 그는 마치 내 코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치 실제로 만난 것 같은 그는 잠시 입을 '헤'하고 벌리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매력. 내가 그에게 느낀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외모 때문에? 솔직히 말해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나의 기준에서는. 그럼 기가 막힌 몸매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키가 좀 작았다. 여자 주인공보다 살짝 작은 느낌이랄까. 몸매 또한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어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꿀 바른 것 같은 목소리 때문에? 내가 목소리에 반한 배우는 '베네딕트 컴버베치'인데, 그 둘의 목소리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목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지만 나는 그에게 '성실함의 매력'을 느낀 것 같다. 그냥 선량하고 성실한 옆집 청년 같은 느낌이 아니라 아주 철저하게 성실한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매력 말이다. 내 바로 코앞에서 연기하는 그는 쉴 새 없이 동공을 움직였고, 입술을 야무지게 움직였으며 고개의 각도를 유지했고, 불편하게 걸었다. 그러다 한순간 흔들리던 동공에 힘이 생기고 그 강해진 눈빛이 숨을 턱 막히게 만들더니 다시 한순간에 흔들리는 동공으로 돌아가 초점을 아래로 떨구며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랜 고민과 연구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어설프게 설정을 하고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계산된 듯한 모습이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그의 연기 자체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 그 자체 같았다. 그렇다. 아마도 내가 그에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매력을 느낀 이유는 단지 외모가 주는 쉬운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쌓아온, 그의 시간들 속에서 그가 만들어온 그 무엇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어떻게, 무슨 근거로 그의 연기를 '성실함의 연기'라고 느끼게 됐는지 앞서 말했듯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분야에 몰두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공부한 사람에게서는 늘 이런 비슷한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말이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즉흥적인 연기를 하는 듯 보이는 배우와 긴 시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만든 설정으로 계산된 성실한 연기를 하는 듯 보이는 배우가 있다. 둘 다 연기를 잘 한다는 전제하에 나는 후자 쪽에 더 매력을 느낀다. 연기는 둘 다 훌륭하지만 난 타고난 그 무엇보다 그 배우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그 태도를 훨씬 더 존중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것이 전부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수 없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당연히 에디 레드메인에 대해 찾아보았다. 몇 개의 기사와 인터뷰를 봤는데 내가 그동안 느끼며 살아온 것이 전부 틀리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그를, 지금 내가 느끼는 그의 매력을 만들어낸 거구나. 그의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된 완벽한 연기, 그 속에 수줍은 소년의 미소가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의 것에서 하나씩 하나씩 발휘가 된 것이고 내가 그것에 완벽하게 낚여버린 것이다.
일부러 '매력'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그게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나는 내가 살아온 날동안 무엇을 했으며 그것이 현재 나에게 어떤 것을 만들어주었는지. 나에게도 매력이란 것이 만들어졌을까. 만들어졌다면 어떤 매력일까. 만약에 존재한다면, 아니 앞으로 내가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이번에 반한 '에디 레드메인'과 같은 종류의 매력을 갖고 싶다.
나의 <신비한 동물 사전>을 보고 나서 쓴 이 글이 에디 레드메인에 대한 글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에 대한 평이기도 하다. 그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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