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짓밟을 수 있는 삶은 없다
이 영화와 인연이 깊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약촌 오거리 사건을 알게 됐고, 우연히 카드 뉴스를 보다가 다시 그 사건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됐고, 이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게 됐다. 나는 이 사건에 관계되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이 사건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하지만 공익성 때문에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현우는(강하늘) 살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사, 검사, 판사는 그를 살인범으로 만들었다. 졸지에 살인범이 된 현우는 그에게 주어진 그 이후의 삶을 모조리 잃게 되었다. 아니, 빼앗겨버렸다.
현우의 삶은 그들에게 지나가다 그냥 쉽게 밟아 짓이길 수 있는 잡초 새싹에 불과해 보였다. 한 사람의 삶이, 똑같이 부여받은 그 삶이 저렇게도 가벼울 수가 있을까. 후 하고 불자 민들레 씨가 흩날려버리는 것처럼. 요즘 법정에서 자주 보는 이름도 언급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의 무게와 너무 비교가 됐다. 어떤 이의 삶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송두리째 흩날려버리는데, 아직도 그 사람의 존재는 모두에게 이렇게나 무거우니 말이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계속 티브이에 나온다. 뉴스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끄떡없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무겁게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현우처럼 땅에 발을 제대로 딛기도 전에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삶도 있다.
어떻게 똑같이 부여받은 삶의 무게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그게 단지 영화의 소재인 것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이 너무 무섭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무섭다. 목숨을 잃는 상상보다 살아 있는 삶이 지옥인 것이 더욱 공포다. 그 공포가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렵다.
현우와 나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는 없을 것 같다. 법에 대해 무지하고, 폭력 앞에 한 없이 약하고, 한 번 무너진 인생을 똑바로 세울 기회를 갖는 것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운 건 현우나 나나 마찬가지이다. 사는 형편이나 배움의 정도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힘을 가진 누군가의 입김 한 번에 날아가버릴 무게의 삶인 것은 현우와 다를 게 없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직업들이 있다. 변호사, 의사, 검사 등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 그들은 법, 의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법에 대해 잘 알고, 의료에 대해 잘 알면 그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위에 서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의 모든 변호사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변호사가 이렇게 큰 이슈가 되는 걸 보면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현우를 돕게 되는 변호사 준영은 다른 변호사들 앞에서 초반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의뢰인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라고 얘기한다. 그 이익은 바로 '돈'이다.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돈'을 지켜주는 직업일까? 초반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이 대답한다. 변호사법 제 1항 1조를 외치면서.
변호사는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살인자라는 낙인과 돈을 맞바꾸자고 제안한다면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과연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흔들려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또 한 번 직업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준영(정우)이 비로소 진짜 변호사가 되는 순간은 진짜 현우를 위한 '변호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이다. 그게 변호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변호사라면 그건 진짜 변호사가 아니다. 그저 법률 서비스 회사 영업사원일 뿐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인간이라면, 어떤 직업을 가진 직업인이라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인 가치 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들릴 수 있고, 방황할 수는 있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잊어서도 안 된다. 누구 하나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새싹처럼 연약한 삶이 속절없이 짓밟혀 다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 영화는 그렇게 짓밟힌 새싹들을 위로하고 있다. 다시 일으켜주려고 손을 내밀어준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대신 그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그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 혹은 어려운 일을 대신해서 이루어내고 보여주는 게 영화나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영화 자체로만 보자면 좀 아쉬웠다. 한탕을 노리는 변호사 준영이 현우를 도와주게 되는 계기부터 여러 가지 설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억지스럽고 편리하기만 한 갈등도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배우 정우의 연기는 무척 인상 깊었다. 배우 정우의 주연작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이 영화의 톤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가벼운 부분에선 확실히 가볍고 무게를 줘야하는 부분에선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 균형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좋게 느껴졌다. 순간 변하는 눈빛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영화의 시나리오보다 그의 연기에 설득되어 가슴이 자꾸 찡해지곤 했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 준영 역의 실제 인물의 사진이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애청자인 나에게 낯익은 얼굴이었다. 뭉개진 새싹을 일으켜 새로운 삶을 선물한 어찌 보면 그 당사자에겐 신과 같은 존재의 사람일 것이다. 그는 이 사건 외에도 여러 잘못된 판결을 뒤집으면서 사람들에게 삶을 선물하며 '재심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에 의해 삶을 되찾은 사람들을 떠올리니 한 사람의 제대로 된 직업 정신, 윤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다시 한 번 크게 느꼈다.
약촌 오거리 사건의 실제 인물인 최씨는(현우 역) 지금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