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내게 가장 값진 것들

by Ann

나중에 내가 꼭 은혜 갚을게. 진짜 미안해. 미안하다. 미안.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나타나지 않은, 전화기는 꺼져있던 친구에게서 온 이 메시지는 이제 그만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일 관계로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가 길어졌고 전화기 배터리는 방전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그 친구의 그 사실들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이미 10년 전부터 들어온, 내겐 익숙한 그의 레퍼토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10년을 기다렸다. 기다리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다시 기대하기도 하고.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여전히 자신의 곁에 있지 않냐고. 나중에 성공해서 이 모든 것들을 보상하면 되지 않냐고. 모르겠다.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그 곁에 '나'는 없어지지 않았냐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그 친구의 이름을 지우개로 지웠다. 오래된 자국이라 깨끗하게 지워지진 않겠지만 선명하진 않을 그 이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긴 시간과 추억을 인질로 잡고 '우린 친구잖아'라고 우기면 그것이 우정이 되는 걸까. 왜 친구든 연인이든 배우자든 가족이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덜 노력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가장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열이 들끓고, 온몸이 욱신거려 고통스러울 때, 마음이 허전해 몸이 으슬으슬 추워올 때, 가슴이 아파 소주로 잠깐 소독하고 마비시키고 싶을 때, 큰 해일 같은 일이 덮쳐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 생각이 나는 사람, 그때 곁에 있어줄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 아닐까. 가장 소중한 것일수록 가장 가치 있는 것 아닐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 아닐까.



값으로 따지면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비싼 것이 나에겐 나의 사람들이다. 그들 없는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너무 거창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감사하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고 있고 그들과 여전히 긴 시간과 좋은 추억과 단단한 신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더욱 집중하고 싶고 그들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다.



이제 예전만큼 힘이 남아 돌지도, 시간이 남아 돌지도 않는다. 그 남은 힘과 시간들을 소중한 관계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모두 쓰고 싶다. 그도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 상관없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몫이니까.



그 친구가 잘 되길 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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