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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Mar 15. 2017

문라이트

사랑 안에서 우린 모두 똑같다


한 소년의 어깨가 너무 가냘프다. 축 처져있다. 눈동자는 늘 안정적으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다. 그 소년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문라이트의 주인공 소년 샤이런의 모습이다.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그저 작은 한 소년이 그 작은 어깨조차 쫙 펴지 못하고 걷고, 서 있고, 앉아있다. 그가 단지 여성이 아닌 남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연약해 보인다고 해서 그 여리고 작은 어깨조차 펼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항상 위축되어 있는 그 모습이 보는 내내 내 마음까지 위축시켰다. 그로 인해 내가 억압받았던 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오래전 내 안에 남몰래 감춰둔, 웅크리고 있던 내가 떠올랐다. 그렇게 감정이 이입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샤이런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 준 후안 아저씨의 입장이 되어있었다. 이 아이가 제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길. 제발.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부드러운 물결 위에 따스한 햇살을 받고 후안의 손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누운 샤이런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그 행복하고 따뜻했던 추억이 그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후안에게 그런 사랑을,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 한 번 받아본 기억이 없는 그는 결코 누구를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따뜻했던 기억으로 샤이런은 케빈을 사랑하고. 사랑했다. 비록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남들처럼 그 사랑을 맘껏 누리지는 못 했지만 마음속에서 그 사랑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 케빈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차에서 내리며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는 샤이런의 모습에서 설렘을 느꼈다. 자신의 첫사랑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이 누구에겐 허락되고 누구에겐 허락되지 않는 감정인가.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샤이런을 보면서 나도 함께 그 설렘에 공감했다. 영락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케빈의 식당에서 본 샤이런의 표정, 손짓, 눈짓, 말투 모두에서 케빈에 대한 애틋함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눈치챘을 것이다. 샤이런의 모든 것이 그 식당 안에서 달랐다는 걸. 다른 사람들 앞에서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우리 또한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모습일 것이다. 


어질어질하고 애틋하고 두렵고 수줍고 설레는 그 감정이 그 식당 안 장면에서 모두 느껴졌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 앉아있는 것처럼 긴장이 됐다. 케빈이 하는 얘기들에 하나하나 반응을 보이는 샤이런의 모습이 그런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다시 만난 그 감정, 여전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감정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 앞에 우리는 다 그렇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골라 찾아오지 않는다.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 약자가 되기도 하고 강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하고 천재가 되기도 한다. 마치 달빛 아래선 모두가 파랗게 보이듯 말이다. 



달빛이 비치면 모두가 파랗게 보이듯 사랑 안에서 우리의 모습도 다 똑같다.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든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든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든 말이다. 나에게 '문라이트'란 바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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