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쇼코의 미소>를 읽고

한국 소설이 더욱 좋아진 이유

by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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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는 가장 약하고 가장 아픈 부분들을 품고 있는 소설이다. 가장 아픈 부분들을 드러내 호호 바람을 불어주고 살살 약을 발라주는 것 같은 작가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러나 아픈 건 아픈 것이었다. 약을 발라주고 불어준다고 해서 완전히 나을 수는 없는, 그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한.






총 7개의 중, 단편 소설들이 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전체적으로 소설들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소설에서 화려한 것만 보려 하는, 소설을 하나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얼핏 이 소설은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읽어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 희망, 안도감은 다른 어떤 소설들보다도 강하게 전해진다.



마치 '내가 이런 사람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 줘서, 내 곁에 있어줘서, 나를 바라봐주어서 고마워'라고 서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이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만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약하지만, 힘들지만 그들끼리 보듬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해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과 희망을 느꼈다. 그런에 묘하게도 그런 희망을 느낌과 동시에 너무 슬펐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보면서 울어봤다. 가장 나의 마음을 움직인 건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라는 소설이었다.



"해옥아."

이모가 엄마를 불렀다. 이모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함부로 자른 짧은 머리, 목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불어난 몸, 거칠어진 목소리. 순애 언니, 나는 언니가 싫고,, 언니의 집이 싫고, 언니의 모든 것들이 싫어.

이모는 그 모습으로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이모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소리쳤다.

"항상 이런 건 아니라고. 나, 항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뒤를 돌아 걸어갔다.

해옥아, 잘 살아.

엄마는 이모의 말을 알아듣고도 못 들은 척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엄마는 이모가 엄마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거기에 계속 서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해옥아, 잘 살아.
이모는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 그 말을 했다.



어릴 때 한 집에서 살며 친자매처럼 지내던 해옥과 순애는 순애가 시집을 가면서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순애의 남편이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해옥은 그를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오랜만에 해옥은 오래 떨어져 지내던 순애에게 연락을 해 집으로 찾아가는데 너무나도 달라진 순애의 모습과 삶을 보고 그만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순애의 처참한 삶이 해옥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해옥은 오래 머무르지 않고 일어섰고, 순애는 그런 해옥을 배웅하면서 소리친다. 항상 이런 건 아니라고. 나, 항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해옥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울었다. 아마 아무도 없었으면 소리 내어 펑펑 울었을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감정이 격해지는 게 얼마만인지.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바닥보다 더 깊은 곳을 들켜버린 순애의 그 외침이 너무 가여워서 그리고 그녀를 가여워하는 해옥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어서 나는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신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순애의 마지막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



해옥아 잘 살아.




<쇼코의 미소> 속 소설들이 모두 이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 대단하고 화려한 서사는 아니지만 사람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힘을 만드는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에세이 같은 문체가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1:1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에 감정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이 책 덕분에, 최은영 작가 덕분에 나는 한국 소설이 더욱 좋아졌다. 한국 소설은 절대 읽지 않았던 나에게 한국 소설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 작가가 황정은 작가였다면 더욱 좋아지게 만든 작가는 바로 최은영 작가다. 그녀의 다음 소설이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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