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의미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두려운 순간들이 수도 없이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순간은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에 대해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순간이다. 당장 선택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 선택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의 시작점인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을 때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이라는 게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참는 것이 습관이었던 나는 참아지는 것은 참았다. 참아지는 고통까지는 그냥 무조건 참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는 것은 그 순간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 부피가 늘어나 터지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터질 때 났던 상처는 흉터를 남겼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터져서 흉터가 되고 그것을 꿰맬 여유가 있어서. 터지지 않으면 흉터도 돌볼 수가 없다. 흉터가 생기기 전에 자신 전체를 놓아버리게 될 수도 있다. 타의든 자의든. <공기 도미노>의 연주처럼. 이름 없는 그 아이처럼.
희미한 두통이 일었다. 쇳내가 났다. 피 냄새였다. 연주는 저도 모르게 입술 안쪽을 상처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오랜 버릇이었다. 지치고 곤란할 때면 그녀는 견디기 쉬운 고통이라는 다른 감각으로 도피하고 싶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나의 '참는 습관'이. 내 기억의 가장 끝자락은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다. 나는 주사를 잘 맞는 아이였다. 입술을 꽉 깨물고 주사의 따끔거림과 주삿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두려움을 참아내는 아이였다. 주사를 맞을 때 몇 살 때까지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 기억 속에는 내가 주사를 맞고, 혹은 맞으면서 운 기억은 없다. 그 기억이 시작이자 나에게 남은 흔적의 가장 희미한 부분이다.
그건 나쁜 습관이었다. 나는 그래서 아직도 주사를 맞을 때 입을 꾹 다물고 참는 아이를 보면 마냥 칭찬해주고 싶지 않다. '무서우면 울어, 아프면 울어, 소리를 질러,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참을 때마다 어른들이 칭찬을 해주면 그 아인 계속 참는 사람이 되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꾸 참으면 자꾸 참는 사람이 되고 자꾸 참는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연주는 무턱대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는 편이었다. 숫기가 없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그 성격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변하지 못했다. 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괴로웠다.
소설 <공기 도미노>에서 연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머니 복자가 갖은 독설을 퍼부어대도 남자친구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관계 균열의 원인을 그녀에게 다 뒤집어 씌워도 카페 아르바이트 생들이 자기 몰래 별 엉큼한 짓을 하며 자신을 속여도 모르는 가족들이 자신을 앞에 두고 무례하게 굴어도 참는,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나도록 참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남자 친구와 싸우고 할머니에게 핀잔을 듣고 주차된 차를 가지러 가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나는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그녀의 결말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답답하게 구는 그녀를 계속 질책했지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죽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산다면 미래는 뻔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마 죽을 줄은.......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줄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난 이런 그녀의 죽음이 그녀의 '참는 습관'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그녀의 짧은 삶은 그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한 조각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 조각들이 합쳐진 큰 그림을 봤을 때 비로소 아! 하고 알게 되는. 그녀의 참고 참았던 일상들이 결국 죽음의 큰 그림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긴 하지만 소설로 그 충격을 간접적으로 겪은 것 같았다. 죽음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어느 순간 내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저항하지 않고, 부딪히려 하지 않고, 고통에 익숙해지려 하는 내가 무서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만약 그때 그렇게 느끼지 않고 방향을 틀어보려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상황이 됐을지 잘 모르겠다. 나의 작은 조각들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냈을지. 상상해보면 좀 오싹해진다.
이 소설의 마지막이 내가 느낀 그 오싹함과 비슷한 서늘함을 느끼게 했다. 아직 어린 소녀. 이름도 나오지 않는 '아이'로 표현되는 소녀. 그녀 또한 지금 자신이 어떤 그림을 완성해나가고 있는지 모를 조각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도 이 관계가 계속된다면 방 안의 몇몇은 평생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탄생하는 부산물은 없을 것이다. 결함의 연쇄. 스카이 훅. 포물선을 그리는 공이 아이의 눈에 담겼다. 흔들리는 골대의 림. 그녀는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자신을 자각했고, 납득했다. 흔한 결과였다.
아버지의 외도, 엄마의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마치 그것이 영양분인 것처럼 흡수하며 자란 아이. 그렇기에 그런 모든 비틀어진 상황에 익숙하고 무덤덤해하는 아이. 그녀의 불행이 예고되면서 끝나는 이 소설이 참 야속하면서도 내 정신을 채찍질했다.
인생이라는 큰 조각을 완성해나가는 작은 조각들. 나의 선택들. 하나의 작은 조각들의 의미들이 내 눈앞에 떠오른다. 매캐하고 답답한 담배 연기 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 이 소설에서 빠져나오니 말이다. 연주는 죽었지만, 아이는 지금 불행의 문 앞에 서 있지만 내가 그들을 대신해 내가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희미한 다짐을 해본다. 어둡고 답답한 소설 속을 방황하다 나오면 이렇게 환기할 기회를 얻는다. 오히려 너무 희망적인 소설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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