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독서

by Ann

9/1

독서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늘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에 기록했던 산 책과 빌린 책,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책에 대한 기록을 한 곳에 쓰기로 했다. 얼마나 읽고 있는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무엇을 읽지 못했는지 눈으로 봐야 좀 더 집중적으로, 효율적으로, 경제적으로 독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써야겠다. 늦었지만.







9/3

내가 고른 책 <대성당>에 대한 독서 모임을 끝냈다. 두 번 읽어도 좋은 책이었고, 사람들과 함께 얘기를 나눠 더욱 좋았다. 역시나 <별것 아닌 일이지만 도움이 되는>이 인기가 많았다.


다음 독서 모임에서 다룰 책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으로 정해졌다. 읽으려고 사두었던 책이었는데 참 잘됐다 싶었다.


독서 모임을 끝내고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동네 책방에 들러 책을 샀다. 사고 싶었던 책 한 권과 즉흥적으로 맘에 들었던 책 두 권을 데려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고르는 책들에 점점 더 만족도가 높아진다.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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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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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 그녀를 알게 해줬지만 소설은 이제야 읽게 됐다. <바깥은 여름> 소설집의 가장 첫 작품인 <입동>을 읽었다. 아이의 죽음과 그로 인한 고통을 부부가 함께 겪어나가는 내용이다. 요즘 우연히도 이런 종류의 단편 소설을 많이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상상하기 싫은, 괴로운, 슬픈 이야기. 아마도 세월호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시기적으로.



요즘 내가 애정 하는 동네 책방 <좋은 날의 책방>이 아니었다면 사지 못했을 책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를 읽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관심을 두어왔던 동네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한국, 일본의 동네 책방들을 탐험하면서 느낀 점들, 알게 된 정보들을 친절하게 전달해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중이다. 나도 틈 나는 대로 다녀보고 싶다. 일단 다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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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새로운 서점을 소개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빛깔로 지역에 뿌리를 잘 내려가고 있는 서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9/6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시사회를 보러 가는 길에 <바깥은 여름>을 읽었다.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는 참 좋다. 지하철에 앉아서 읽었는데 중간에 덮을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 읽다가 내가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겨우겨우 참으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영화가 다 끝이 나고 먹먹해진 가슴으로 다시 지하철에 탑승해 <바깥은 여름> 중 읽고 있던 소설을 마저 읽었다.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소설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주 차갑게. 내 눈물은 만들어지다가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9/9

다시 여름이 돌아온 것 같은 날씨였다. 차가운 공기의 카페에 앉아 <바깥은 여름>을 다 읽었다. 나의 상황과 소설의 제목이 딱 맞아떨어졌다.


소설의 내용은 조금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겪거나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에 비해 너무 잘 읽혔다. 문장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밀도가 높았지만 가독성이 높은, 참 희한한 소설이었다. 곧 긴 글을 써야겠다.


읽고 돌아오는 길에 <빨간 책방>의 <바깥의 여름> 편을 들었다.







9/11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를 읽는 중이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9/19

책을 만들고 있다. 마음만 급해서 좀처럼 책을 못 읽겠다. 혼자서 하려니 힘이 든다. 책 만드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내가 쓴 글들을 종이 위에서 보니 영 맘에 안 든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 잘 엮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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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다.









9/25

처음엔 좀처럼 읽기 싫더니 점점 재밌어지는 소설, 밀란 쿤데라의 <농담>. 첨엔 읽으면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도대체 농담인 거야, 하나도 재미가 없는데!'하며 인상을 썼는데 읽다 보니 이 소설은 농담에 한이 맺힌 인물의 이야기였다. 한이 맺힐만하다. 맺힐 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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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더니 오늘은 미세먼지가 극성이었다. 오래간만에 책방 가는 계획을 세웠는데. 책방에 <각본 비밀은 없다>를 주문하고 오늘 찾으러 갔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빠르면 하루 늦어도 3일 안에는 받을 수 있는 책을 일주일 넘게 기다려 직접 가지러 가는 나. 그게 더 재밌고 좋다. 왜일까.


버스를 타고 10분을 쉬지 않고 걸어 책방에 도착해 책을 받은 후 커피를 시키고 앉아 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최종 각본이 담겨 있는 책이었다. 영화를 보지 못한, 그래서 내용도 결말도 반전도 모르는 상태로 읽었다. 2시간을 꼼짝 안 하고 읽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급하게 책을 덮고 집으로 가 저녁을 먹고 이어 마저 다 읽었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정말 재밌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읽은 느낌. 내가 배우 손예진이었더라도 이 각본을 읽고 이 영화를 안 찍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재밌었다. 물론 각본 속 이야기는 끔찍했지만......


각본집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다니. 앞으로 자주 각본집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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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책을 엮기 위해 내가 쓴 글들을 죽 읽어보니 참 이상한 감정이 들락거린다. 내가 쓴 글이 꽤 좋았다가, 너무 싫었다가를 반복한다. 싫을 때는 다 때려치우고 싶다가 그럭저럭 괜찮을 때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가고 있다.








9/27

너무 가혹하다. 농담 한 마디 때문에 맞닥뜨려야 하는 일들이. 루드비크 그가 참 불쌍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너무 웃기다. 농담 한 마디에 이렇게 됐다는 것이. 읽으면서 조지 오웰의 <1984>가 생각났다. 루드비크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로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나의 글을 모아 묶어두고 싶었다. 나의 글들에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달까. 그 일 덕분에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건 아쉽지만 무언가 도전할 수 있어서, 설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혼자서 해내 보고 싶다.


이제 가을밤의 바람이 겨울바람을 흉내 낸다. 어영부영 그렇게 가을도 지나갔다. 겨울엔 내가 나의 책을 읽고 있기를 바라본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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