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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Dec 19. 2017

덜 고통스러운 하루가 되길

홀로코스트에 대해 쓴 책 <생존자>의 작가 테렌스 데 프레는 책의 내용과는 상반되게 자살을 했다. 유태인들이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려고 했는지 그들의 정신을 전해준 그가. 그는 '왜 죽음을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 죽음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는데, 그 얘기를 들은 이후 나의 자살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샤이니 종현 군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냈다. 그의 유서를 천천히 읽었다. 그는 오래 이 순간을 준비해온 것 같았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자신의 삶을 끝내버린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둔 사람 같았다. 어쩌면 그 누구도 이 결말을 바꾸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의 유서를 읽고 나니. 

            


내가 샤이니 종현을 인상 깊게 생각했던 건 릿터 1호에 실린 인터뷰 때문이다. '책 읽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게다가 책 읽는 아이돌이라니. 알고 보니 소설집까지 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다. 그가 쓴 가사도 찾아보곤 했다.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가사들. 뭔가 달랐다 그는. 그때는 그런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어제 비보를 접하고 다시 꺼내 본 그의 인터뷰에 '우울하다'라는 단어가 있었다. 이제야 보였다. 그땐 못 봤다. 그냥 슥 지나갔겠지. 이제 '우울'이라는 말은 마치 유행처럼 흔해진 단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도 나도 우울하다는 말을 쓰는 시대이니까. 그냥 그런 거겠지 하고 지나갔겠지.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르고. 정말 우울의 병에 걸려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숨겨주는 그 말.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선택을 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치기 힘든 암과 같은 불치병 혹은 난치병에 걸린 것처럼 그도 자신이 그런 병에 걸린 걸 잘 알고 있었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이라고.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아마 주변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수차례 말해줬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넌 소중한 사람이라고, 잘하고 있다고, 떠나지 말라고. 또 그에겐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었다. 하지만 암세포처럼 퍼져나간 그 병이 그런 말을 한다고 사라져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탓할 순 없다. 치료를 받아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 1기 2기가 있는 것처럼. 물론 아주 유능한 의사를 만나면 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허무해지고 두려워진다. 나 혹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미 늦어버린 후회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을까. 그저 그의 인생이라고, 그의 선택이라고, 그의 운명이라고 맡겨둬야 하는 걸까. 옆에서 아무리 위로를 건네고,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힘을 줘도 이렇게 빠져나가버리는걸. 

그의 소식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락날락 거린다. 나에게서 이제 사라져버린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병, 나를 알아갈수록 두려워지는 내 안의 상처들, 삶을 스스로 끝낼 자유 등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오늘 하루 무사하길. 덜 고통받길. 주어진 하루가 괴롭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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