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차가운 세계 속의 따듯한 시선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by Ann

글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왜 그렇게 슬픈 소설을 썼을까. 눈물을 흘리는 대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 전체를 순식간에 슬프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소설을. 그들에게서 왜 희망을 아니 나에게서 왜 희망을 몽땅 빼앗아 가버린 걸까. 그는 이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본 것일까.


내 눈에 작가가 헤일셤이라는 곳에 데려다 놓은 그들이 마치 주인을 잃은 불쌍한 동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곳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알지 못하는 하지만 알 것만 같은 두려운 운명을 기다리는 그들. 그 모습들이 아른거렸다.




나는 이 소설이 '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다. 몰랐다면 이 소설을 읽는 초반부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알고 읽은 나는 초반부터 슬펐다. 그들이 너무 가엾었다. 그저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을 법한 크고 작은 친구들 사이에서의 일들이 모두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은 그들을 낳아준 부모도 없고, 그들의 존재의 이유는 그저 아픈 인간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함이고, 그들 인생의 끝은 그렇게 자신들의 장기를 다 내어준 후 죽는 것이다. 그걸 알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가엾은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소설 전체가 슬픔의 늪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모든 걸 얼핏 알고 있었다. 알고 싶어 했지만 한편으론 두려워서 알려고 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묻고 답하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을 법한 사람들에겐 자세히 따져 묻지 않았다. 말을 해주지 않으면 않는 대로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그들만의 정보를 만들어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그것으로 충분히 표현되어 나에게 전해졌다. '두려웠다'라는 표현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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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뿐이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지. 하지만 지금 그걸 설명한다 해도 너희가 이해할 것 같지가 않구나. 언젠가는 너희가 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녀를 다그치지 않았다. 탁자 주위의 분위기는 지독히 당혹스러웠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었기에 호기심이 충족되지 못한 채로 우리는 그런 위태위태한 분위기에서 벌어날 수 있는 화젯거리가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아마도 어느 정도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다시 토큰에 대한 토론으로 화제를 바꾼 다음 우리는 한시름 던 기분이었다. 하지만 루시 선생님의 말에 혼란을 느낀 나는 이후 며칠 동안 밤낮으로 줄곧 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이 작가의, 이 소설의 백미 아니었을까. 슬픈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아도,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나를 보내지 마>를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슬픈 소설로 만들어준 것 아닐까.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담담한 어조가 더욱 그런 정서를 만든다. 캐시의 독백, 캐시의 향수, 캐시의 추억. 그것들이 잘 섞이면서 소설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담담한 정서 속으로 속절없이 나를 끌어들였다. 그의 세계로.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가즈오 이시구로 만의 세계로.




결말도 그 슬픔과 맞닿아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인간만큼의 생도 아니고 영생도 아니고 고작 3년 정도의 연장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3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소문만 믿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단지 소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그들. 그 좌절감, 허무함에 몸부림치고 고함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처절해 보였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니...... 작가는 왜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그들을 몰아붙였을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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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것들." 그녀는 거의 속삭이듯 말한 다음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들이 가여워지면 질수록 인간들을 탓할 수 있으니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인간이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희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슬퍼지면 질수록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의 악함이 더욱 도드라지게 되고 그럼 더욱 탓하기 쉬워진다. 내가 그랬다. 그들이 만약 그들만의 삶을 쟁취해냈다면, 그래서 희망을 찾아 떠났다면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에 대해 눈을 돌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이 점차 비극적으로 흘러가고 그들이 슬퍼질수록 나는 그들에게 몰입하게 되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점점 키웠다. 결국 인간들을 향해 즉 나를 향해 묻게 되었다.


복제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때문에 희생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인간에 의해 인간이, 동물이, 자연이 수도 없이 희생되어 왔다. 그런 이들은 회의나 반성 따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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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게임의 담보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리라는 건 안다.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생각해 보렴. 너희는 그래도 행복한 담보물이야. 한때 어떤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렸어. 세상일이 때때로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의 생각이나 감정은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가 버리지. 그 과정 중 한 지점이 너희의 성장기와 겹쳤던 거란다."

"마치 왔다가 가 버리는 유행과도 같군요. 우리에겐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래,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렴. 너희는 이전의 수많은 클론들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서 살았어. 그리고 앞으로는 클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누가 알겠니? 유감이구나, 얘들아. 하지만 이제 난 가 봐야겠다. 조지! 조지!"



순전히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얘기한다. 그들이 어떤 마음일지, 얼마나 절망적 일지에 대해서, 그 원인 제공을 자신들이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헤일셤이라는 곳을 만든 그들도 결국 자신들이 복제 인간들에게 우월한 자가 그렇지 못한 존재들에게 베푼 선의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모순적인지.


그래도 헤일셤에 있던 선생님들 중에서 그들에게 사실을 전하려고 혹은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한 선생님이 있었다. 단 한 명이었지만. 그의 존재는 그나마 이 소설 속에서 인간에 대한 바늘구멍만큼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 선생님으로 인해 토미의 과격한 분노의 행동이 점차 나아졌고, 그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런 존재들이 이 소설 속에서도 단 한 명뿐이어서 참 씁쓸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끼는 이 감정 또한.




책을 덮고 나니 홀로 남아 있는 캐시가 참 안쓰러웠다. 루스와 토미는 그녀의 간병을 받으며 적어도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병을 받으며 배웅을 받으며 떠났지만 캐시는 혼자 남았고, 혼자 떠나야 한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마다 모든 슬픔을 겪어야 했고, 그 이후 그들을 그리워했고, 앞으로의 일을 혼자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캐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도망칠 생각 조차 하지 않고 다시 눈물을 훔치며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 캐시가.


작가의 캐시를 바라보는 시선, 따뜻한 시선을 그제야 나는 느꼈다. 한치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 차가운 세계 속에서 괴로워하는 그래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바로 나에게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켜준 것이겠지. 그들에 대한 연민, 애정에 대한 감정을.




정말 오묘하고 신비로운 소설이었다. 잔잔한 것 같으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잔잔한 호수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커다란 파도가 나를 덮어버렸다. 신선했다. 구체적으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그의 다른 소설도 이런 느낌일까. 어떤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을까. 마구마구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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