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터널 끝에서 발견한 또 다른 터널

토머스 H. 쿡 - <붉은 낙엽>을 읽고

by Ann










에릭은 자신의 인생이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불행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에 비해 현재 자신이 꾸리고 있는 가정은 무척 평범하다고, 아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보다 자신이 훨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확신했다. 자신은 아버지 보다 훨씬 괜찮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확신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순식간에 무너져버릴 모래성과 같은 확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젠 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가장 무서운 때일지도 모른다. 폭탄이 째깍째깍 터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자주 경험했다. 갈등이 일어난 후에야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경험. 엄마와 한바탕하고 나서 씩씩거리고 억울해하면서도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없었는지, 나에게 모순은 없었는지,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고 연인이 나에게 화를 낼 때도 당시엔 기분이 나쁘지만 또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일에 있어서도 한 번 실수를 크게 하고 나서야 그동안의 문제가 뭐였는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그렇게 꼭 뒤늦게. 그나마 그렇게 점차 관계나 능력이 성숙해져가면 좋겠지만 아예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땐 후회해도 정말 늦다. 에릭처럼.



제니, 너는 일이 이런 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이런 피해는 피할 수 있었고,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될 일이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어떨 땐 가족에 대해 남보다 더 모를 때도 있다. 부모 자식 간이던 부부간이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속을 수 있다. 작년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에세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도 수 클리볼드는 자신의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았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아들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들의 목숨을 지키는 일도 하지 못 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했어야 그 어마어마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 끝없는 물음과 고민과 고뇌 끝에 그녀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에릭 또한 모든 것을 알 수 없었고, 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인간이니까. 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한 가지 보면서 안타까웠던 건, 그리고 두렵기도 했던 건 에릭이 외면했던 것들이다. 나 또한 외면했을 수 있는 것들.


그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 키이스를 보면서도 큰 문제 아닐 거라고, 별문제 아닐 거라고 근거 없는 낙관으로 회피했다. 남다른 아들의 상태 때문에 그를 피하게 되고 애정을 쏟지 못하는 자신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저 괜찮은 척, 아들을 사랑하는 척하려 애썼다. 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약하고 무능하다고만 생각했지 형이 어떤 상태인지, 형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하나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들에 대해, 형에 대해 잘 알지 못 했던 에릭은 끝내 그 벌을 받고야 만다. 그들에게 무관심했고 무심했던 만큼 끔찍한 벌을. 몰랐던 만큼 의심은 커져 갔고, 그 의심은 에릭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켜버렸다. 문제는 늘 그곳에 머물러있다.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맞다.


나도 늘 회피하던 사람이었다. 연인과 문제가 생길까 봐 사전에 모든 걸 차단하려 했었다. 최대한 그가 화내지 않을 방향으로, 최대한 우리가 부딪히지 않을 상황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고 해도 그 장애물들이 사라져주는 건 아니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저 그 장애물을 보면서도, 늘 눈에 거슬려 하면서도 치우려 하지 않았을 뿐. 치우고 나면 훨씬 더 빠르고 편안한 길을 다닐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피하려 했었다. 마음의 짐으로 묶어두고 가지고 다니면서. 결국 그 문제들은 먼지가 쌓이고 쌓여 점점 크게 자리 잡아갔다. 문제가 문제를 만들고 또 그 문제가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몸집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 문제는 한계에 도달하여 뻥! 하고 터져 순식간에 모든 것을 허물어버렸다. 그제야 깨닫는다. 되돌릴 수 있었는데. 내가 만약 그때 회피하지 않았더라면......


몇 번의 뼈저린 후회 끝에 나는 되도록이면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려워도 두려워도 웬만하면 바깥으로, 밝은 곳으로 꺼내어 마주하고 부딪쳐보려 한다. 조금씩 조금씩 외면하던 순간들이 모여 어떤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지 알기 때문에. 어떨 땐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나를 데려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에릭은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너무 늦게...... 사람의 생각이, 의심이, 믿음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 무섭다. 안타깝다. 에릭의 무심함이 의심을 불러왔고, 의심이 비극을 초래했다.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삶이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참 잔인하기도 하다. 에릭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작가라는 사람 말이다.


에릭이 키이스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좀 더 다가갔더라면, 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지켜봐 줬더라면 그래서 끝내 굳건하게 키이스를 믿어줬더라면 달라졌을까. 에릭이 자신의 형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해보려 노력했다면 달라졌을까. 에릭이 점점 내려가는 엄마의 입꼬리를 보고 엄마의 소리 없는 몸부림을 알아챘더라면 달라졌을까. 불행하게도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냈음에도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확실하게 얻지는 못했다. 어쩌지 못할 일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머리를 어떤 생각이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 에릭의 머리에 가득 찬 의심이 빚어낸 비극적인 인생처럼.


모든 것이 벌어진 후 우리는 후회를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에릭이 에이미에게 그것을 얘기해줌과 동시에 나에게도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너는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마.'하고.


하지만 인간의 삶은 실수투성이다. 나에게 에릭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내가 외면하고 회피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 변해 나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아직은 그저 나를 봐주고 있는 것일지도. 그래서 그저 조금 더 부딪히려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매 순간 깨어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그게 어려운 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에릭과 같은 비극이 닥친다면 그건 정말 신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행이 뚜렷한 이유를 보여주지 않듯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 소설은 그런 인생의 아이러니를 너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잔인한 삶. 겨우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눈 앞에 또 다른 터널을 발견한 것 같은 허무함을.


언제부터일까? 내가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이. 드라마는 늘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소설은 그 중간 어디쯤을 바라게 된 것이. 완전한 해피엔딩을 바라지 않게 된 것이. 이제야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문학을 알 것 같다. 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묻어나게 된 것일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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