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필립스 - <밤의 동물원>을 읽고
<북 클럽 문학동네>에서 보내준 가제본 <밤의 동물원>을 다 읽었다. 이 책 또한 굉장히 빨리 읽었다. 이번에 읽은 소설 두 권은 신기하게도 비슷하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 모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다룬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가 위험에 처하고 그 위험을 빠져나가려 애를 쓰는 주인공. 둘 다 부모인 것도 같다. 한 명은 아빠, 한 명은 엄마. 평소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지옥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녀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러고 싶지 않은 날에도 교내 총기난사가 생각나 억누른다. 교실로 난입하는 남자들, 비명을 지르는 선생들. 무장괴한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창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선생이 링컨을 가장 먼저 탈출할 아이 중 한 명으로 선택할까? 이런 생각은 이성적이지 않다고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타일러 왔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처지를 보라. 분명 그렇게까지 어이없는 상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볼 때 무서운 생각, 상상들을 할 것이다.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내 그런 상상을 거둘 것이다. 그렇게 상상한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1년 365일, 24시간을 아이들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상상에 사로잡히면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아이에겐 일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아이들에게 혹은 가정에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를 걱정한다. 이 소설을 보면서 희한하게도 또다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 떠올랐다. 콜럼 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떠오른 것이다. 이 소설의 인간 사냥꾼들도 성인이 아닌 어린 소년들이라는 것이 더욱 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소년과 소심해 보이는 소년이 조를 이루어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미국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과거가 아닌 듯했다. 한국에선 성범죄가 그렇다. 그래서 특히 딸을 둔 부모들이 무서운 상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늘 늦게 다니지 마라, 옷을 단정하게 입어라, 남자 친구 함부로 사귀지 마라 등등의 잔소리를 하신다. 남학생들은 아마 들어본 적 없는 잔소리일 것이다. 어쨌거나 둘 다 자주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집 안에 가둬둘 수는 없다. 그저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수밖에. 나의 아이들에게, 가정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면서.
하지만 그 안도가 이기적인 안도에서 끝이 나면 안 되는 것 같다. 왜냐고. 언젠가 혹여나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의 끝에 세월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외면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나의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만약에 내가 그 희생자들의 가족이었다면, 그들의 부모였다면, 그들의 자식이었다면, 그들의 형제, 자매였다면......
어째서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다행이란 생각 대신 미안하단 생각이 먼저 든다. 그들에게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들의 불행의 한 조각이 온전한 나의 하루의 한 조각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래서 요즘은 타인의 불행에 더욱 공감하고 몰입을 하게 된다. 어떨 땐 너무 괴로울 정도로. 그리고 한 편으론 나에게 끔찍한 일들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날 것만 같다.
<밤의 동물원>에서 그런 인간의 심리가 아주 섬세하게 묘사된다. 조앤은 아들을 위해 몇 번이나 타인을 외면한다. 그들을 구하려는 시도는 아들 링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지만 모질게 마음먹고 돌아선다. 그러다가 몰려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런 그녀가 끝내 사냥꾼이 겨누는 총구 앞에서 소녀 앞을 막아선다. 그녀를 도와줬던 소녀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의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외면했을까. 아마 나도 조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이미 그들을 등지고 도망 칠지도. 천벌을 받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지도. 도무지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앤은 끝내 용감했지만 나는...... 나는?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욱 미안해하고, 더욱 관심 가지려 노력하고, 더욱 괴로워하는 것일지도. 나에게 아직 그런 용기가 없으니까. 물론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밤의 동물원>의 엔딩은 평범하다. 반전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끔찍하게도 아끼고 사랑하는 이의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달이 된다. 그녀가 맡고 있는 아이의 냄새, 그녀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 아이를 지키려는 독하고 단호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4D 영화처럼.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자의 고군분투는 꼭 아이의 엄마가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나는 아이가 없어 가족들을 떠올렸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 아빠, 동생, 뚜이.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가진 엄마가 가장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읽는 것이 두려울지도.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옆에서 아무 일도 없이 새근새근 숨 쉬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라고. 이것이 소설이어서 다행이라고. 아무 일도 없는 이 일상이 참 다행이라고. 아이를 꽉 한 번 안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