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태를 알게 해주는 뚜이

by Ann

슬기 방에 있는 침대를 버렸다. 10년도 넘은 침대인데 매트의 휘어짐이 거의 해먹 수준이 되어 허리도 아프고 작업할 공간도 협소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우선 슬기 침대부터 버리기로 했다. 나사를 풀고, 하나하나 분해해나갔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뚜이는 방 밖으로 분리.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뚜이는 안에서 소동이 벌어지자 방문 앞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슬기가 하나둘씩 분해된 침대의 파편들을 가지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방문 틈으로 보이는 바닥에 쌓인 먼지는 마치 먹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슬기와 나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먼지 알레르기......


자꾸 참견하는 뚜이를 이리로 데려갔다가 저리로 데려갔다가 안았다가 놓았다가 해가면서 침대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우리의 20대를 고스란히 함께 한 침대였다. 침대가 사라지고 난 방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버리는 쾌감을 제대로 맛본 날이었다. 다음 날은 내 침대 차례였다.


밤 10시가 넘어 시작한 침대 버리기 작업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대충 정리 후 우리는 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슬기가 갑자기 “뚜이야, 너 눈이 왜 그래!?" 뚜이가 어릴 때 2번이나 결막염에 걸려 고생했던 터라 나는 결막염 노이로제에 걸려 있던 상태였는데 슬기가 그런 소리를 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왜? 뚜이 눈이 왜?!”


불을 켜고 뚜이 눈을 자세히 보니 역시나 한쪽 눈이 살짝 부어오른 것처럼 보였다. 결막염이었다. 아마 먼지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원인은 뚜렷하게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뚜이는 한쪽 눈이 불편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동물병원에 갈 수는 없는 시간이고 내일 아침에 더욱 심해지면 어쩌지. 먼지 때문인가, 아니면 어디에 부딪혔나? 혹시 손톱에 긁혔나?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만들어냈다. 일단 오늘은 어쩔 수 없는데도 말이다.


속상했다. 얼마나 조심했는데. 잘 안 하던 청소도 매일매일 하고, 모래 때문인가 싶어 화장실 밑에 매트도 깔고 늘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는데 다시 걸려버리다니...... 안약 넣기도 너무 힘든데 휴. 속상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일단 누워 내일 눈 뜨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 안약을 처방받아봐야겠다 결심했다.


사실 고양이 결막염은 고양이들이 흔히 걸리는 질병이다. 심각한 질병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낫는 아이들도 있고, 안약을 넣어주면 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이가 불편해하는 게, 아픈 게, 싫었다. 치료하는 과정도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눈에 안약 한 번 넣으려면 하루 종일 뚜이 눈치를 보며 씨름해야 했다. 그마저도 눈에 제대로 들어간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안약 넣은 후 경과를 유심히 지켜보고 기다리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게 나에게는 굉장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뚜이를 통해, 뚜이를 키우는 과정이 또 다른 나를, 나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주고 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이 많은 상태인지, 한 가지 걱정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지. 나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대했을지, 어떤 문제들이 생겼을지 상상이 됐다. 지금 이 상태로 키웠다면 분명 아이도 나도 힘들지 않았을까. 고양이보다 훨씬 더 신경 쓸 부분도 많고 훨씬 더 키우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뚜이와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조금 더 대범하고 편안해지는 연습을 한다. 아직도 전전긍긍, 안절부절, 걱정 또 걱정이 이어지지만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그저 뚜이가 이 땅 위에서 자신의 삶을 다할 때까지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살다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얘기해준다. 그런 마음으로 돌보다가 예상치 않은 혹은 예상하기 싫은 일이 닥친다고 해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얘기해준다.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나는 날 잘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반전이 내 삶에 생긴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고되기도 한 게 인생인가 보다. 그렇게 받아들여가고 있다.



IMG_4841.jpg 결막염에 걸린 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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