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철학자와 늑대'를 보다가
무엇이든 하기 싫은 날들이 길어졌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고,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서겠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난 그냥 무조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와 같다. 가장 마음이 편안한 시간이니까.
잠깐이면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무엇이든 하기 싫은 날들이 연장되면서 나는 삶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아있다는 것과 말이다. 분명 내 몸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다. 꼭 해야 할 일들은 아무 의미 없이, 생각 없이 헤치워버리듯했고 하는 게 좋은 일들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 뒀다. 눈은 뜨고 있지만 보이는 것만 봤고, 입은 뚫려있지만 해야만 하는 말들만 했고, 손가락은 움직이지만 기계적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나에게서 생기를 죽 빨아들여 훔쳐 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고 내일도 내일인 아무 변화가 없는 하루. 죽은 사람과 다를 게 없는 삶. 바로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이 나를 출구 없는 곳에 가두어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빛을 찾아 나오길 바라면서 말을 걸었다. 언젠간 들어주길 바라면서.
그러던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는데 이 구절을 발견했다.
욕망과 목표와 과제가 있기 때문에 미래도 있다. 그리고 그 미래라는 것은 우리가 각자 현재의 시간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로부터 미래를 박탈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
나도 모르게 작가가 가진 의문을 따라갔다. "죽음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나쁜 것일까? 주변의 존재들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 자신에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이 나쁘다는 것일까?" 한때 잠깐 '죽은 이에게 죽음이란 것이 나쁜 것일까. 남아 있는 사람이 더욱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책의 저 구절을 보면서 작가의 의문을 따라가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본 후 내가 떠올린 것은 병실에 누워 자신이 먹고 싶고, 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며 슬퍼하는 한 시한부 환자였다.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심정을 떠올려 보니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죽음은 그들에게 빼앗아가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바로 '미래'였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많은 것들, 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앞으로도 영영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심정은 얼마나 안타깝고 아쉽고 괴롭고 슬플까. 더 이상 미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스럽고 허무할까.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냉정하고 잔인한 것이다. 그것을 앞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래서 그 괴로움을 떨쳐내고자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자 죽음을 다른 관점에서 다루고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 속을 헤치며 돌아다니다 보니 미래를 아직 빼앗기지 않은, 빼앗기지 않을, 미래를 가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으로 이끌려 가게 됐다. 그들이 그렇게 가녀린 손을 뻗어 잡고 싶어 하는 그 미래를 손에 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이든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눈을 가지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입을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손을 가지고 나는 왜 이러고 있나. 나는 왜 그들을 조롱하고 있나.
이끌려 간 생각 끝에 나를 발견했다. 내가 서 있었다. 나의 소리를 들은 걸까. 나는 서둘러 나의 손을 잡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 좀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