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잠시 멈출 수 있었던 시간.

걷는 듯 천천히를 읽고.

by Ann



x9788954637367.jpg 고레에다 히로카즈 -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 '공기인형'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봤음에도 그게 그의 작품인지도 몰랐다. 그를 알게 된 건 이동진 평론가 덕분이었다. 제대로 감독에 대해 알게 된 이후 그의 영화가 궁금해 보게 된 작품은 (그를 잘 모르던 시절 본 공기인형은 제외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이다. 보고 난 후 '앞으로 이 감독님의 영화는 내가 다 보겠구나' 싶었다. 관객을 위해 남겨 놓는 여백이 좋았고 소소하고 따스한 시선이 정말 좋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대해 더 알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소설 <환상의 빛>을 영화화했었다는 사실이다. 그 소설의 정서와 문장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소설을 그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들었다니. <환상의 빛>의 톤은 그의 모든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쉽게도 영화를 구하지 못해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그와 그의 영화가 더욱 좋아졌다.



그렇게 서서히 그를 좋아하게 된 나는 이번 에세이집을 읽고 더욱 정말 좋아하게 됐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멀리서만 바라보다가 직접 얘기를 나눈 기분이다. 다 읽고 나서 '아... 내가 짐작했던 그런 사람이 맞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따뜻하지만 두루뭉술하지 않고, 느긋하지만 게으르지 않고, 소탈하지만 섬세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에세이집에서 그의 글을 보고 느낀 것이다.



글도 사람도 정말 제목과 너무 닮았다. 걷는 듯, 천천히. 그는 모든 것을 가만히 천천히 관찰하고 모든 것들에 대해 가만히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생각한 것들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가만히 천천히 한 번 볼래?'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급했던 마음들이 서서히 속도를 늦춰 멈춰 서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가족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걷는 듯 천천히 산책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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