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꾸준히

by Ann


벌써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4달째에 접어들었다. 일단 목표했던 3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꾸준히 오래 배우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뭘 배운다고 하면 일단 안 된다고 했다. 어차피 금방 하기 싫다고 할 게 뻔하니까.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의지력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진실을 알게 되면서 약간의 의지력이 향상되기는 했다. 뭐든 꾸준히 하면 ‘된다’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래서 그림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도 무조건 3개월 이상 6개월까지는 해보자 했다. 그 정도는 해봐야 내가 흥미를 느끼는지, 잘할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해나갈지를 알게 되니까. 힘들어도,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도 무조건 하자. 그렇게 3개월이 꽉 채워졌다. 이제 반, 3개월이 남았다.


처음에는 흰 캔버스 위에 검은색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우와, 생각보다 두려운 일이 아니구나. 천천히 하면 되는구나.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며 그 과정을 즐기면 되는구나. 나 스스로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못을 박았던 건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구나. 나는 그저 시간이 필요했던 거구나.


미술을 통해 새롭게 배운 시선들도 흥미로웠다. 글을 쓰기 위한 시선과 또 다른 시선. 사물의 이면을 보게 되고, 그리기 식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 부분이 참 재미있다. 내가 보는 그대로를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내가 본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겸손을 다시 한번 배웠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새로운 시선도 배우게 된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다른 이들의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그림 그리기가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 가장 기쁘다. 물론 그림을 탁월하게 잘 그리는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것이겠지만 그냥 나처럼 그리는 행위 자체만 보면 말이다. 비율도, 선도 엉망진창이지만 그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쁘다.


오늘은 눈 드로잉을 했다. 너무 어렵게만 보여 늘 피해왔는데 정화가 콕 집어 그것을 해보자고 했다. 완벽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도대체 내가 저걸 어떻게 한단 말이야 걱정을 했다. 그래도 일단 그리기 시작했다. 정화의 도움을 조금씩 받으면서 슥슥 그려나갔다. 내가 생각했던 불가능은 조금씩 어설프지만 가능으로 변해갔다. 원본과 점점 멀어지긴 했으나 ‘눈’이 그려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구나. 잘 하지 못할 뿐이지.


무엇이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망친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오래 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 어찌 보면 그게 더 어려운 것 같지만. 3개월을 즐겁게 보낸 만큼 남은 3개월도 그냥 무작정 즐겁게 그려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도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늘 꿈만 꾸던 ‘그림 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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