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샀다

by Ann


더워도 너무 더웠다. 입추가 되어서야 약간 서늘한 바람이 찰나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지독했다. 올여름. 그런 여름날 동안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 나와 동생과 나의 고양이 뚜이는 폭염 속에서 올 여름의 대부분을 견뎠다.



우리 집엔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에어컨이 있었는데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전기 효율이 워낙 좋지 않아서 이사하면서 버렸다. 흰색 에어컨이 진한 노란색이 될 정도였으니까...... 우리 가족 모두 더위를 잘 안타는 탓에 에어컨을 버리고 살아도 특별히 불편한 걸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잠을 잘 때는, 밤에는 견딜만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사 온 집이 복병이었다. 3층으로 낮은 데다가 좁은데 해는 또 엄청 잘 들어와서 사우나 같은 뜨거운 열기가 쉽게 가시지를 않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우리 집에 고양이가 생기면서 그 더위가 더욱 신경 쓰였다. 온몸에 털을 두르고 있는 이 아이는 얼마나 더울까.



정말 더위를 잘 안 타는 나인데, 한여름에도 꼭 이불을 덮어야만 잠을 자는 나인데 이번 여름은 숨이 막혀서 가슴을 칠 정도였다. 뜨거운 열기 속에 5시간 이상 있으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땀은 쉬지 않고 흐르고 그 땀과 함께 온몸의 기운들도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지쳐 누워있는 고양이, 나의 고양이 뚜이를 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가족들과 상의해 결국 에어컨을 구입하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반대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랬더라도 샀을 테지만.



에어컨을 사본 적이 없는 터라 일단 인터넷을 먼저 뒤져보았다. 요즘 에어컨 얼마나 하나. 집이 좁으니 벽걸이 에어컨 정도 있으면 되겠다 싶어 알아봤는데 오, 가격이 5-60만 원대. 에어컨이 원래 이렇게 비쌌나. 벽걸이 에어컨은 좀 쌀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쓰여 있는 가격은 원래 가격이 아니었다. 주문을 하는 순간 20만 원 이상이 껑충 뛰어버렸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 설치비에서 실외기 가격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후기가 말도 못 하게 나빴다. 설치비를 옴팡 뒤집어썼다는 사람, 기사 님이 제대로 설치도 안 해주고 갔다는 사람, 엄청 불친절했다는 사람 등등.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브랜드의 정식 기사가 아닐 경우도 있어서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건 불안해서 인터넷으로 절대 못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동생과 마트엘 갔다.



가전제품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그동안 갈 일이 없었던 곳. 티브이, 에어컨, 냉장고는 그냥 엄마, 아빠가 사는 물건이었는데 이제 내가 보고 고른다. 내가 나이를 먹긴 했구나. 별것에서 다 실감했다. 온갖 종류의 브랜드와 에어컨들이 나를 반겼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생기는구나. 에어컨들이 놓여 있는 쪽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170만 원? 300만 원? 600만 원???? 에어컨이?? 17만 원은 아닐 테고...



아니 에어컨이 이렇게 비쌌나? 우리 집에 있던 그 에어컨은 대체 얼마였지? 에어컨 가격을 보고 나는 너무 놀라서 점원을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벽걸이 에어컨은 아예 걸려 있지도 않았다. 일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벽걸이 에어컨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갔다. 역시나 좀 더 저렴했다. 제일 저렴한 걸 보니 에너지 효율이 5등급. 등급이 낮을수록 싼 거였다. 전기 요금 때문에 키지도 못할 에어컨들.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또 둘러보는데 나와보는 점원들이 없었다. 에어컨 이제 그만 팔아도 된다는 건가? 뭔가를 묻고 싶은데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에어컨 이제 안 파는 건가.



그러다 우리를 발견한 한 남자 점원 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시고 우리가 원하는 제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지금 주문하면 일주일 정도 후에 설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겨우 한 분에게 설명을 듣고 일단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동생에게 계속 말했다. 에어컨 비싸다, 우와 에어컨 진짜 비싸다.



나는 그냥 당연하게 에어컨은 다 있는 건 줄 알았다. 에어컨 없는 집을 주변에선 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다고 하면 다 놀랐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사냐고. 그냥 우린 견딜만해서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 그랬다. 그런데 마트에서 돌아오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 비싼 에어컨들이 어떻게 집집마다 있대? 아니 어떻게 에어컨 가격이 걱정이 아니라 에어컨 때문에 생기는 전기요금 걱정을 한대??



결국 우린 그 친절한 점원이 있었던 곳에서 에어컨을 구입했다. 벽걸이 에어컨으로. 구입하러 다시 갔을 때 다른 점원이 있었는데 우리 집 평수에 그 에어컨은 너무 작다고 겁을 줬다. 너무 작아서 시원 해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쩌고 저쩌고. 아, 저희는 그냥 마루만 시원하면 돼요. 했더니 설치할 때 취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고 저쩌고. 네, 알아요 알겠는데요 저희는 더 비싼 건 못 사요. 그냥 벽걸이 에어컨이 딱이에요. 하고 속으로 얘기하고 겉으로는 '아 네. 그냥 이걸로 주세요.' 했다. 나도 돈이 없기는 하지만 간이 작아서 크게 지르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돈이 없어서, 부족해서 벽걸이 에어컨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려고 저렇게 상담을 하는 걸까. 저 직원은. 참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충분히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괜찮다고 하는데 계속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좀...... 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라고요. 첫 번째 상담해주셨던 분은 이것저것 묻지 않고 더 저렴한 에어컨까지 설명해주셨는데. 더 친절한 건 바라지 않지만 조금의 배려는 필요해 보였다. 작은 걸 고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더 싼 걸 고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재밌었던 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에어컨을 설치한 날, 에어컨 설치 기사 님이 설치 후 3시간 정도 후에 뭘 빼놓고 가서 다시 왔는데 우리 집이 시원해서 조금 놀랐다는 것이다. 평수에 비해 에어컨이 작아서 안 시원할 줄 알았는데 시원하다고. 자기네들은 설치만 해주고 바로 가니까 몰랐는데 꽤 시원하다고. 갑자기 나에게 겁을 줬던 그 직원이 생각났다. 그분도 분명 직접 사용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 직원 때문에 사실 진짜 큰 맘먹고 에어컨을 샀는데 하나도 안 시원하면 어쩌나, 괜히 돈 아낀다고 했다가 에어컨이 쓸모없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27도로 맞춰놔도 너무 시원했다. 늘 늘어져있던 뚜이도 초흥분 상태로 변신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결국 내 손에 피를 냈다. 그렇게 시원했니.



모처럼 집에서 뽀송뽀송하고 시원하게 있으니 행복했다. 그러다가 깜찍하게 달려 있는 벽걸이 에어컨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에어컨은 진짜 너무 비싸. 다들 어쩜 그렇게 부자야. 어우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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