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하는 얘기 중 빠지지 않는 주제는 일 이야기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일 때문에, 일터의 사람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듯 보였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일에 대해, 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친구들 얼굴에 침을 튀어가며 신이 나 얘기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선 세상 심각한 얼굴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처럼.
그 친구들은 대부분 워커 홀릭이다. 정말 신기한 게 너무 열심히 한다. 좋아하는 일도 아닌데. 그냥 일 자체를 참 열심히 한다. 휴일에도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일을 하고, 퇴근 후에도 회사, 일 얘기를 한다. 나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그 일에 대해선 어떻게든 싹 잊고 연관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친구들은 1년 365일 일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즐겁다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으니 보는 내가 다 괴롭다. 정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건강도 나빠진 듯 보였다.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보다가 오히려 그것이 부담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자기 위해 술을 마실 때도 있다고......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 오늘 안에 다 끝내지 못할 일,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걸 꼭 내가 다 끌어안아야 하는 걸까.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안 하니까, 오늘 안에 다 끝내야 하니까, 승진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열심히'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특별히 사는 게 팍팍해 보이지도, 여유가 없어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뭘까. 또 온갖 스트레스가 자신을 공격하는데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걸까. 그날 평소 자주는 안 마시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열변을 토했다.
왜 오늘을 희생시키냐고, 무엇을 위해서 나의 소중한 아내, 남편을 힘들게 하냐고, 무엇을 위해서 파릇파릇한 지금을 놓치냐고. 놓쳐버린 망쳐버린 오늘, 지금은 언제 어떻게 보상받을 거냐고. 회사가,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상사가 당신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냐고. 또 그것을 보상해주냐고.
너무 안타까워서 심하게 흥분을 했다. 후회막심. 미안했다. 그들에게. 내가 뭐라고. 내가 뭘 안다고. 어쩌면 그들에게 토해낸 이야기들이 나에게 하는 얘기였을 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을 낭비하는 나에게,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건네는 다짐,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열심히, 성실하게 라는 단어에 대한 신뢰를 잃어간다. 다만 무엇에 대해 열심히, 성실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나를 망치는, 나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에 열심히, 성실하게 라는 말을 붙이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성실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적당히 요령껏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도 괜찮더라. '더'하지 않아도 괜찮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직하게 일하고 조금 미움받는 것이, 덜 인정받는 것이 훨씬 행복하더라. 그 에너지를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에,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 쏟아붓는 것이 훨씬 더 즐겁더라.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끝엔 대부분 허탈함, 허무함, 배신감이 나를 맞이한 적이 더 많았다.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열심히 한 대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지 않았던 때가 더 편하고 여유로웠던 것 같다.
사람 관계도 그랬다. 노력해서 만들어나가야 하는 관계들을 다 잘라버리고 온전히 내 마음이 가고 함께 있을 때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니 훨씬 더 나의 일상들이 풍요로워졌다. 원래도 무척 심플한 인간관계였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와 잘 맞지 않고,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관심 스위치를 아예 꺼버렸다. 그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나의 대부분의 에너지가 절약이 되었다.
그렇게 나를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시간들을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살자 지혜야. 너나 일단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