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

by Ann


뚜이는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깰까 봐 조심조심 까치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좁고 아늑한 내 방. 매트를 펴고 스탠드 조명을 켰다. 딸깍. 방이 따듯해진다. 온기가 도는 기분이다. 붉은빛 덕분에.


매트 위에 올라와 벽에 등을 기대고 낮에 보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녀 이름은>을 읽었다. 끝까지, 구석구석 이 시대의 약자들의 이야기가 꼼꼼하게 다뤄진 책이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나라하고 현실적이다. 좀 서글펐다. 나의 과거도 있었고, 나의 미래도 있었다. 이 소설들 안에.


그 소설의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배경음악으로는 꽤 자주 이용한다.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나 생각을 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클래식 틀어줄래?”라고 하면 알아서 틀어준다. 자주 듣다 보니 이제 제법 익숙해진 곡들이 많아졌다.


늦은 시간인데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모양이다. 뚜이가 깰까 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했다. 뚜이가 깨면 우리를 곤히 자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꿀잠이란 걸 꿈도 꿀 수 없으니까. 요즘 통 아침까지 죽 자지 않고 새벽에 깨 우리를 괴롭힌다. 말 그대로 정말 괴롭다. 뚜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문자로 밤 수다 및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이 글을 쓴다. 행복한 순간들을, 충만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기억하고 싶어서. 나를 제자리로 되돌려줄 무기를 만들어놓고 싶어서. 불행이 나를 삼키려고 할 때 꺼내보고 싶어서.


충만한 순간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 편안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나를 지켜줄 거라 생각한다. 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내일 도서관에서 빌릴 책들을 검색했다. 찾으러 갈 생각을 하니 설렌다.


잠들기 딱 좋은 날씨다. 이불을 목까지 덮고 조금 춥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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