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은 빠지지 않고 무조건 배워보자 하고 시작했던 그림 수업이 드디어 끝났다. 일단 그림 실력과는 별개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왔다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선생님에게 직접 배우는 그림 수업은 끝이 났지만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는 색연필 드로잉 수업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재밌을 것 같다.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나의 미술 선생님이자 친구에게 쫑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같이 배우기 시작했던 친구도 불러 다 같이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전보다 일찍 수업을 시작해 지난 번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하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은 장소는 얕은 산속에 위치한 한정식집이었다. 말이 한정식이지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나올 것 같은 반찬들이 상을 한가득 채우는 정감 가는 곳이다. 이런 점심 메뉴만 보아도 우리가 이제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돌솥에 물을 부어 고소한 숭늉을 만들어 먹는 우리들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젓가락과 숟가락이 상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들의 고민들도 함께 상을 돌아다녔다. 한 친구는 전세 계약이 끝나고 새로운 계약 조건 때문에 고민이었고, 또 한 친구는 사업 문제 연애 문제로 고민이었다. 나만 그렇다 할 고민이 없었다. 나에겐 전세 계약을 할 집도 없고 괴롭히는 연인도 없었으므로. 돈을 좀 못 버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친구들은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으면서 웃었다. 이렇게 시간을 내 함께 밥을 먹으면서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풀리는 모양이었다.
밥도 맛있고 반찬들도 맛있었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들이 내 속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숭늉까지 먹은 후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서 커피를 사 숲속에 있는 테이블로 가지고 올라갔다. 그늘이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가끔 서늘함을 몰아내주어서 딱 좋은 온도였다. 다만 검은색 산모기들이 몰려들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방에 나무 밖에 없는 공간은 오랜만이었다. 자동차도 없고 건물도 없고 오로지 나무와 사람들. 아, 모기도. 그것만으로도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눈도, 귀도, 몸속의 장기들도 시원하고 깨끗한 것들을 들이마시고 더럽고 자극적인 것들을 내뱉는 것 같은 느낌. 이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찾게 되나 보다. 점점 자연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본능일까.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떨고 싶은 만큼 수다를 떨고, 모기들에게 뜯길 만큼 뜯긴 후 일어섰다. 한 친구는 아기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는 상호대차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도서관의 문자를 받고 도서관으로, 또 한 친구는 자신의 가게로 갔다. 나의 친구들은 이제 엄마로, 사장님으로 돌아갔다. 나는 ‘나’로 돌아갔다.
책을 받고 도서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작은 카페로 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귀여운 시추가 선선한 바람을 친구 삼아 쌔근쌔근 자고 있다. 깨우지 않기 위해 엄청 천천히 조용조용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중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출근이다. 이제 나는 ‘나’에서 원장님, 선생님, 어이, 지혜 씨 등등의 이름을 가진 그 누구로 돌아간다. 오늘과 같은 시간들을 만끽하려면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