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나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나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를 움직이는 건 무엇인가?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책.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 책에는 뇌신경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두 거짓말쟁이가 꾸며낸 듯한 이야기들이다. 들으면 "말도 안 돼~!"하고 말 이야기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모자인 줄 알고 자신의 머리에 쓰려고 했다면 쉽게 믿겠는가? 엥? 설마?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뇌가 그렇게 지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뇌의 아주 작은 부분만 결손이 되어도, 과잉이 되어도, 이상이 생겨도 아내와 모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든지,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는다든지, 자신의 손과 발을 느끼지 못한다. 혹은 갑자기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든지 예술 부분에 특별한 재능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뇌의 어떤 부분이 발달해서일까? 유독 글 쓰는 것에 마음이 가는 것은 나의 살아온 날들의 어떤 것들 때문일까 아니면 뇌 때문일까.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분명한 생각보다 내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적다는 것이다. 나의 뇌 속에 지배자가 들어앉아 나를 조종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먹으면 안 돼 하면서도 먹고, 하면 안 돼 하면서도 하고.
이 책에서 뇌의 어떤 문제 때문에 드럼을 엄청나게 잘 연주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문제로 인해 일상생활은 불편하지만 드럼 연주를 프로 연주자보다 훨씬 잘 치는 것이다. 그런데 뇌의 그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자 불편한 증상은 완화가 되었지만 드럼 연주 실력은 형편없어졌다. 그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래서 평일에는 약을 복용하고 드럼을 연주하는 주말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시 드럼 실력이 예전처럼 돌아왔다. 그의 드럼 실력은 열심히 연습해서 좋아진 것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분에 대한 자극 때문이었다. 그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자 드럼 실력은 다시 평범해졌다. 그렇다면 그는 드럼을 잘 치는 사람일까 아닐까. 무척 혼란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런 혼란은 나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뇌의 지배를 받는 거구나. 그가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존재구나. 바보가 되기도 천재가 되기도 하는구나.
참 흥미로운 분야인 것 같다. '뇌'라는 것. 거의 나 전체를 조종하는 놈. 이 책을 읽고 '뇌'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내가 그저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뇌의 이상에서 비롯되는 증상이라면? 그런 호기심 끝에 또 다른 뇌에 대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이다. 객관적인 뇌의 작동을 알고 나면 종종 우울해지는 나의 감정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 이건 지금 나의 뇌가 이렇게 때문에 이러는 거구나 하고. 깊이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참 따스한 시선을 가진 의사였다. 물론 호기심과 같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결국 사람을 병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간, 커다란 삶 한 덩어리로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환자의 삶이 더욱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를 만난 환자들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와중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올리버 색스와 같은 의사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보다는 나의 삶을 고려해줄 수 있는 의사. 그렇지만 안다. 그럴 수 없는 현실이라는걸. 그저 인상 찌푸리고 기계적으로만 대하지 말아 주길 바랄 뿐이다. 최소한. 그만해도 고마운 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곳이 나에게는 병원이다. 올리버 색스 같은 의사가 정말 희귀하고 드물기 때문에 그가 존경받는 거겠지.
올리버 색스의 책으로 나의 독서 세계가 확장된 느낌이다. 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생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를 하면서 참 즐겁고 뜻깊은 순간이다. 이 책이 출발점이 되어 나아갈 길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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