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엄마가 된 그녀

by Ann

'우리는 과연 어떤 남편을 만나게 될까?'


'글쎄. 나타나긴 할까?'


이런 얘기를 나누며 한숨 짓고, 깔깔대던 우리.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대로지만 그녀는 엄마가 되었다. 이제 태어난 지 20여 일 밖에 되지 않은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었다.






아기를 보러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혹시나 아기가 자고 있을까 미리 전화를 하고 올라간 터라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아주 아주 놀랍도록 작은 아기가 자고 있었다. 정말 작았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작았다. 그녀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조용하게 나를 반겼다.


"왔어?"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깨끗이 씻고 작디 작은 아기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혹시 나 때문에 깬 건가 싶어 당황하고 있는데 그녀가 자고 있는 거라고 말해줬다. 아기는 자면서도 별의 별 표정을 다 지었다. 찌푸렸다가 웃었다가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저 작은 머리 안에 어떤 생각들이 떠돌아다니고 있길래 자면서 저런 표정들을 짓는 것일까.


한참 아기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를 봤다. 왠지 낯설었다. 똑같은, 전과 다름없는 내 친구임이 틀림없는데 낯설었다. 민낯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부스스한 몰골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인데 낯설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돼 그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어때?"


물어보면서도 이미 그녀의 얼굴에서 답을 읽었다.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좋아 보였다. 역시나 그녀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아기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신나 했다. 갑자기 아기가 깨서 칭얼칭얼 거렸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어서더니 아기의 밥을 가져왔다. 칭얼거리던 아기는 금세 조용해졌고 엄마의 품에서 힘차게 젖병을 빨았다.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금세 나에게 자연스러워졌다.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계속됐다. 우리의 대화 내용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기 얘기 80%, 결혼 생활 얘기 10%, 나의 근황 10%의 비율이 됐다. 전에 없던 대화 주제가 생겼고, 그 주제가 낯설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그녀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귀여운 자세로 잠이 든 아기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뜻하고 포근한 아기 냄새에 좀 더 취해있고 싶었는데 나는 이제 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한 세계에서 차갑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말했다.


"나는 언제 시집 가서 언제 아기 낳고 키우니."


그녀가 말했다.


"꼭 할 필요는 없어."


순간 우리는 크게 한 번 웃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난 최대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날씨가 꽤 쌀쌀해서 옷깃을 여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