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내부자들을 보고

배우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영화

by Ann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이 영화를 통해 배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감독들이 왜 이 배우들과 함께 한 것이 꿈만 같았다고 했는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배우들의 힘!


이 영화는 솔직히 배우의 역할이 90%였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의 존재감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백윤식, 이경영 그 외에 조연들의 연기는 튼튼하고 안정감 있게 영화를 받치고 있었고, 그 위의 이병헌, 조승우는 마음껏 뛰어다니며 연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병헌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숱한 루머와 실제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는 터라 과연 내가 그의 연기에 몰입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의 그런 걱정은 점점 더 옅어져 가다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연기로 나를 설득시키고 말았다.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가 결코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의 눈빛은 나를 홀리고 말았고, 끝내 끌려가지 않으려던 나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고 말았다.


좋은 사람이 아닌데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 아닌데 그 분야에서 과연 성공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늘 갖고 살았다. 대기만성형의 사람들을 보면 '결국 바르고 좋은 인성을 가진 실력자들은 이렇게 뒤늦게라도 꽃을 피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던 나는 이병헌을 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것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반성과 성찰 없이 앞으로 계속된다면 그 일이 결국 그의 발목을 붙잡아 거꾸로 추락하고 말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역시 그의 연기는 좋았다.


조승우는 이 영화가 조승우를 위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이 영화에 녹아들어 간 느낌이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조승우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편집에서 느끼지 못 했던 리듬감을 말이다. 웃겨야 할 때 제대로 웃겨주고, 강렬해야 할 때 활활 불타올라줬다. 배우가 해야 할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나가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캐릭터들도 함께 성숙시켜나가고 있는 것 같은 조승우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 놀라웠던 점은 조승우가 이병헌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병헌의 기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굉장히 세게 느껴졌었는데 조승우가 은근히 그 기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달까. 그에게 쌓여있는 내공의 레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를 여러 번 고사했다는 것이 지나친 겸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베테랑 보다 유쾌하지 못 하고, 부당거래보다 진지하지 못 했던.


배우들이 나를 영화에 끌어들였지만 그 외의 것들은 자꾸 나를 영화 밖으로 내몰았다. 일단 영화의 이야기가 계속 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수면 밑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느낌이 아니라 찰랑찰랑 수면 위에서만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 국회, 기업에서 가장 큰 힘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비리를 깡패와 검사가 파헤쳐 응징, 복수하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인데 그 과정에서 깊이 파고들고 그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동원되는 불편한 행위와 장소, 잔인한 장면이 계속 의미 없이 반복됐다. 그 장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피로해져 갔다. 그래서 전반부는 꽤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조승우가 맡은 우장훈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의와 출세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정의를 실현하기를 원하기도 하고 출세를 원하기도 한다. 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좀 더 보여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든다. 베테랑의 서도철처럼 거칠 것 없이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부당거래의 최철기처럼 더러운 똥통 속에서 뒹구는 것도 아닌 우장훈의 캐릭터는 뭔가 흐물흐물했다. 명확한 형체가 아닌 흐물흐물한 실루엣 같다고나 할까. 그가 좀 더 고뇌하고 좀 더 뒹굴고 좀 더 괴로웠다면 그런 그가 만들어낸 결말도 꽤 흥미로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의 크기만큼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참 허무했다고나 할까. '왜 진작에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부터 시작해 이것을 위해 이렇게 처절하게 달려왔던가 하는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 부당거래에서 느낀 묵직함과 온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의 진하고 쓴맛에 비해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이 강하고 베테랑에서 느낀 유쾌하고 통쾌한 느낌에 비해 찝찝하고 텁텁한 느낌이 강한 그런 영화였다.



이병헌과 조승우의 버디 무비


이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 것처럼 느껴지는데 난 이 영화의 후반부가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후반부만 보자면 이 영화를 그저 부정부패를 파헤치고 고발하려는 영화로 보기보다 이병헌과 조승우의 버디무비로 보는 것이 낫다. 또 그렇게 보는 게 이 영화를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지루하고 맥락 없어 보이는 전반부에 비해 이병헌의 복수와 조승우의 본격적인 출세기를 보여주는 후반부는 조승우와 이병헌의 기분 좋은 앙상블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전반부에 비해 훨씬 밝고, 웃음을 주는 장면들도 많다. 두 사람의 애드리브로 보이는 코믹한 장면들은 앞뒤 맥락으로 봤을 땐 좀 뜬금없긴 하지만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또 브로맨스라고 붙여도 좋을만한 장면들도 꽤 많다. "깡패야"하고 시종일관 반말로 일관하던 우장훈(조승우)이 안상구(이병헌)에게 존댓말을 하게 되는 그 순간 뻔하지만 피식 웃음 짓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야기의 힘은 꽤 부족한 듯 하지만 이런 그들의 케미는 끝까지 나를 영화의 골인 지점까지 잘 끌고 갔다.



이 영화가 정확하게 어떤 지점에 안착하게 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베테랑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부당거래나 신세계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투캅스와 같은 영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이 지금 그들의 자리에 좀 더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도무지 목적지까지 끌고 갈 힘이 없는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는 배우의 힘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영화였다. 그렇게 이병헌은 다시 이렇게 뿌리를 내렸고, 조승우는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