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방에 갇힌 기분으로 한 달을 보냈다. 결코 그 방에서 탈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방에서 나와 좋아하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그 방에 가둔 장본인인 뚜이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환한 대낮에 잠을 자기 위해 아늑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도 또 늘 그랬듯 책과 아이패드를 들고 카페로 나왔다. 늘 그랬듯이라고 썼지만 늘 그랬던 일상을 다시 되찾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
위와 대장을 절개하고 실이물질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한 뚜이는 그런 적이 없는 고양이처럼 돌아왔다. 그 녀석 배의 상처 만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자고 있는 나의 머리 털을 쥐어뜯고, 새벽 4시부터 울어대고, 돌아서면 다시 밥그릇 앞에 가 있고, 벽지를 살살 건드리며 나의 반응을 살피는 뚜이로 돌아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방에 조금씩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고, 덕분에 보이지 않던 출구가 보였고 마침내 출구의 손잡이를 손으로 잡고 돌려 그 방을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일상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신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일상의 모습들이었다.
그 어두운 방에 갇혀 있는 동안 나에게 필요한 건 하나도 없었다. 밥도 필요 없고,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도 필요 없고, 옷도 필요 없고, 화장품도 필요 없었다. 단지 뚜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과 그렇게 만들어줄 병원비와 잠시만이라도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책과 영화면 됐다. 그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몸무게가 줄었고, 쓰지 않은 돈이 통장에 쌓였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나에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니 신기했다. 정말 이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았단 말이야? 그럼 난 지금 얼마나 많은 걸 가진 거야?
뚜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옷도 골라 입고 화장품을 바른다. 하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다. 밥을 덜먹는 것이 어렵지 않고 커피를 안 마시는 것이 어렵지 않고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침 화장품도 다 썼는데 전에 쓰던 것보다 더 저렴하지만 나에게 잘 맞았던 화장품을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원래 쓰던 것이 향도 좋고 사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유지하려고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이 모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 의지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이번 경험이 분명 나를 아주 조금 바꿔놓았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을 바꿔놓았음은 확실하다.
사람이 바뀌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법륜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집에 가면서 전기 충격기를 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권유한다. 자신이 원치 않는 생각이 들 때마다, 행동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기를 갖다 대라고 얘기한다. 그 정도의 충격이 아니면, 죽다 살아난 것 같은 정도의 충격이 아니면 사람은 바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번 경험은 몸에 전기 충격기를 갖다 댄 것 같은 고통이었고 충격이었다. 이 정도로 힘들 줄은 사실 몰랐다. 그 충격과 고통은 아주 조금이지만 나를 바꿨다. 전보다 아주 조금의 용기 한 줌이, 인내 한 줌이, 겸손 한 줌이, 절제 한 줌이 생겼다. 0.1cm의 전진이었다.
앞으로 이만큼 혹은 이보다 더 한 시련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없길 간절히 바라지만 분명 또 나를 미친 듯이 흔들어놓겠지. 그때 이번 경험을 떠올릴 것 같다. 끝내 꾸역꾸역 통과해냈던, 결국 끝이 났던, 그로 인해 조금 달라졌던. 그 기억으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잘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다시 한 번 동생의 큰 존재감을 느꼈다. 존재만으로도 자꾸 넘어가려 하는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동생이 감당해주면서 나는 나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초췌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종종 씨익 웃었다. 우리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마법의 주문처럼 정말 괜찮아졌고, 우리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정말 다행이다. 만개하는 벚꽃을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돼서. 이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경쟁하듯 통통하게 활짝 피어나는 벚꽃들의 뽐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