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원래 그래

by Ann



아는 오빠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는 상투적인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중요한 용건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당장 바쁜 일은 없어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가 문득 요즘 한참 이슈인 버닝썬과 정준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너무 심각한 것 같아.”


나는 단 한 번도 남자들이 문제다, 모두 남자들이 얽힌 범죄다 등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범죄 행위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


“그 사건에 관련된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이 참 씁쓸하더라. 재수 없게 걸린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에 대해 사람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 그게 얼마나 큰 범죄인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짓밟는 거잖아.”


내가 그에게 원하는 대답은 별것 아니었다.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고 내 말에 동의하는 이야기를 덧붙여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나에게


“사람들도 좀 만나고 바깥세상으로 좀 나와.”


라는 대답을 돌려줬다. 순간 당황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와 그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의 접점이 어디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무슨 이야기를 한 거지? 저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은 거지? 당황한 나머지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대답해버렸다.


“나 사람들 만나고 잘 돌아다니는데?”


그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아, 이건 그 얘기가 아니구나. 내가 예상한 대로 바로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


“자꾸 안에서 그런 것들만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계속 그런 것만 보고 있으면 사람이 세뇌가 돼. 원래 지질한 남자들 다 그래. 남학생들만 있는 교실에 가보면 다 그래. 지질하고 자존감 없는 애들 다 그러고 있어. 그냥 관심 끊고 사는 게 속 편해. 뭘 자꾸 그런 걸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랬다. 그에게는 그저 익숙한 일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고 그게 이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거고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내가 별것 아닌 거 가지고 소란 떠는 사람이 된 거였다. 그리고 뒤이어


“자꾸 남녀 편을 가르면 안 돼.”


라고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 남녀 편을 갈랐다는 것인지 아무리 내가 한 얘기들을 되감아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숨을 가다듬고 나의 이야기를 건넸다.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야. 그저 소수의 남자들이라도 그것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여태까지는 그래 왔으나 앞으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기지 말고.”


“남자들은 절대 안 바뀌어. 괜히 그런 거 관심 갖고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냥 살아.”


마지막 그의 발언은 그동안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호감마저도 깡그리 태워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손님이 왔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한참 후에 다시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고, 그에게 온 문자에도 답장하지 않았다. 예의 따위 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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