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추억만으로도 충분했다

영화 <라이온킹>을 보고

by Ann


동네의 작은 상가 안에 극장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이다. 그땐 연중행사로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그 극장에서 우리 가족이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이었다. 그 영화를 영화관에서 처음 보게 해준 아빠께 정말 감사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선물해주셨으니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난 지금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감동은 내 마음에 자리 잡아 지금의 내 감수성의 작은 씨앗이 되어주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와 비디오로 수십 번을 보고 거의 대사를 외웠다. 물론 정확한 영어 대사가 아닌 들리는 대로. 자려고 누워 동생 등에 대고 심바의 대사를 연기했다. 동생은 아마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DVD로 수십 번, 넷플릭스로 수십 번 봤다. 볼 때마다 감탄했고 감동했다. 음악은 아마 수백 번 듣지 않았을까. 종종 기분이 다운될 때 <하쿠나마타타>를 일부러 찾아 듣곤 했다. 물론 뮤지컬 <라이언킹>도 봤다.



나는 <라이언킹>을 사랑했다. 그 영화가 실사로 만들어진다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렸고, 그때 그 감동과 추억을 재현하기 위해 이번엔 내가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영화 <라이언킹>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



그래서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고 왔냐고? 물론 아니다. 여러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내가 원작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일 수도 있다. 그것과 비교를 하면 당연히 불리하다. 하지만 그 이유뿐만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 또한 내가 <라이언킹>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실망스러움이 큰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음악이다. 가사가 없는 음악은 괜찮았지만 가사가 있는 음악들은 많이 아쉬웠다. <I just can’t wait to be king>, <Hakuna Matata>,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과 같은 음악들은 전작의 음악과 많이 달라졌다. 단지 달라진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멜로디에 기교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연기가 좀 밋밋한 것이 아쉬웠다.



심바와 날라가 자주를 따돌리며 부른 <I just can’t wait to be king>은 이 음악과 함께 나오는 장면은 애니메이션과는 차별을 두면서도 실사만의 느낌을 잘 살려 가장 좋았던 것에 비해 아쉬웠다. 심바의 목소리가 너무 성숙하고 기교가 많다. 아직 어리고 철없는 심바와 잘 어울리지 않는 톤이었다. 같은 이유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도 아쉬웠다. 비욘세의 목소리는 날라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는데 창법은 글쎄...... 쉴 새 없는 꺾기 기교에 그들의 감정을 느끼기 보다 목소리에 귀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또 웅장하고 신비한 배경과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 품바와 티몬의 연기력도 전보다 밋밋해졌는데 심바와 날라가 가까워지는 것에 슬퍼하는 감정이 좀 덜 전달되는 기분이어서 아쉬웠다.



자연스럽게 연기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왜 실사 버전에서는 대사의 리듬감,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자꾸 하게 되는 이야기가 ‘밋밋하다’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표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목소리가 더욱 다이내믹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동물을 위한 연기가 아닌 그냥 사람이 나와서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 연기에 좀 실망스러웠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대사가 특유의 강약, 높낮이, 리듬감이 있었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컸다가 작았다가. 목소리만 들어도 재미있을 만큼. 그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많이 사라졌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걸 원했던 걸까. 표정과 목소리를 일치시키기 위해 그랬던 거라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둘 다 다이내믹이 없다.



장면의 디테일들도 부족했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나올 법한 자연의 구석구석을 놀라울 정도로 재현했지만 심바의 익살스러움, 의외의 용감함, 날라와 심바의 케미, 스카의 능청스러움, 자주의 허당 매력 등이 사라졌다. 그 결과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캐릭터에 기대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더라면 난 얼마큼 그들에게 몰입할 수 있었을까. 무파사가 죽었을 때의 심바를 보고 눈물을 흘렸을까? 이번에도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미 난 이전의 심바를 알고 있으니까. 그때의 심바를 보면서 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스토리이다. 이건 제작진의 의도다. 일부러 스토리를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단지 그들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조금 다른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주 작은 설정들은 바뀌었다. 자주의 역할이라던가, 스카와 하이에나들의 관계라던가, 스카와 사라비의 관계 등등.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바꾸어도 크게 티 나지 않는 작은 부분들이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가 쓴 기사가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




“심바에게 실망한 날라가 스스로 저항의 리더십을 쥐었다면? 사자 무리의 특성상 그도 무파사의 딸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씨네 21,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중에서)



이 말에 아하! 하며 무릎을 쳤다. 사자 무리에서 왕이라면 그 무리의 거의 모든 암컷과 짝짓기를 했을 테니 말이다. 프라이드 땅에는 무파사와 스카밖에 없었으니. 그렇다면 날라도 그의 핏줄일 확률이 높다. 사자의 특성상 암컷이 왕이 된다는 건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그녀만의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스카에게 대항했다면? 그런 대안을 내놓은 그녀의 의견에 무척 공감했다.



도망치듯 프라이드 랜드를 떠난 심바가 돌아오자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이 진부한 이야기. 이제 애니메이션이니까 그래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픽사의 여러 작품들, 디즈니의 바로 전작 <알라딘>만 봐도 그렇다. 이번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기겠다는 것과 차별을 두겠다는 것 둘 다 이루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모르는 나도 발견한 오역들. 그중에서 코끼리 무덤에서 무파사의 뒤를 따르던 날라가 심바에게 "너 오늘 무척 용감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전혀 다른 의미의 "넌 용감한 줄 알았는데..."로 바뀌어 나왔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니 자막만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오역인 듯하다고.



이렇게 안 좋은 점들을 쉴 새 없이 늘어놨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못 볼 만큼의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작을 무시하면 정말 볼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아이맥스 3D로 보았는데 그렇게 크고 가까이 보았는데도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기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만들어진 과정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력이다. 아무런 장비 없이 안경과 게임기 같은 것만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물론 사전 준비 후에) 누가 보면 저들이 지금 게임을 하는 건지 영화를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



사자와 원숭이 등 많은 동물들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데 나에게 진짜 동물과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면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또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심바의 털이 라피키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의 과정을 조금 길게 보여주는데 그 장면 또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실사판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었다.



아기 사자들의 앙증맞은 모습들도 볼거리이다. 특히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라면 심바를 보며 집에 있을 고양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집사들의 눈엔 고양이 잔뜩 나오는 영화로 보일지도.



오랜만에 영화에 대해 조목조목 길게 떠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을 너무 사랑하고 그만큼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영화들보다는 훨씬 많이 아는 영화였기에.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지만 가족들과 또다시 같은 영화로 추억을 남긴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3D영화를 처음 보는 엄마, 아빠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드린 것, 팝콘과 콜라, 맥주를 놓고 먹으며 기다린 시간, 예전에 라이언킹 보러 갔던 이야기를 나눈 것 등등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곱슬머리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