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곱슬머리도 괜찮아

영화 <풀잎들>을 보고

by Ann


나는 반곱슬 머리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해줘야 마구 튀어 오르는 돼지털 같은 머리들을 얌전히 눕힐 수 있다. 파마를 한지 정확히 6개월이 지나면 힘없이 누워있던 애들이 벌떡 일어서기 시작한다. 날씬했던 머리가 서서히 몸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나는 엉덩이가 크다. 게다가 오리궁뎅이(?)다. 바지를 엉덩이에 맞춰서 사면 허리가 크고 허리에 맞춰서 사면 엉덩이에서 걸린다. 하의를 잘못 입으면 다리가 짧아 보이고 뚱뚱해 보인다. 엉덩이 부분이 넓은 바지가 편하다. 스키니진은 입어본 지 오래다.


나는 여드름 피부였다. 그나마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큼 울긋불긋 크게 올라오지는 않는다. 그 대신 여드름과의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가 남아있다. 안면홍조도 있다. 조금 덥거나 건조하거나 쑥스럽거나 창피할 때면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나는 입술색이 어둡다. 똑같은 색의 립스틱을 칠하면 내 입술은 조금 더 진하고 어둡다. 원래 입술이 빨갛거나 핑크빛이 도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얼굴빛을 훨씬 밝게 만들어주니까.


기타 등등의 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다. 악착같이 매년 비싼 돈을 주고 매직 파마를 하면서 살았고, 바지보단 치마를 많이 입었고, 화장품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그러던 내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영화 <풀잎들>을 보면서 내가 달라졌구나? 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풀잎들>에 나오는 여자 배우들이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전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편안한 옷을 입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배우들이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아름다웠지만......


주인공 김민희를 비롯해 서영화 배우, 김새벽 배우, 공민정 배우, 이유영 배우 등등 얼굴에 색이 들어간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메이크업은 했을 수 있으나 그냥 스크린으로 봤을 땐 주근깨가, 잡티 하나하나가 비칠 정도였다. 그들의 그런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참 예뻐 보였다.


모두가 다른 눈썹을 가졌고 다른 머리카락을 가졌고 다른 입술을 가졌고 다른 목소리를 가졌다. 그 하나하나가 두드러지게 보이며 그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웠다.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그들이 입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몸매에, 부담스럽지 않은 옷. 옷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그런 옷.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들이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나 자신도 그런 눈으로 조금씩 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의 콤플렉스들이 콤플렉스가 아니라 그냥 ‘나’, ‘나의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곱슬머리가 나에게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을까. 큰 엉덩이가 왜 가려야 할 부위가 되었을까. 그저 태어났을 때 직모인 사람, 곱슬인 사람이 있는 것이고 엉덩이가 크고 작은 사람이 있는 것일 뿐인데. 무엇이 더 낫고 말고가 아닌데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내 곱슬머리가 싫지 않고, 볼록 나온 아랫배도 가끔은 “뭐 어때!” 하며 내버려 두고 (물론 아주 가끔...) 엉덩이를 가리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그때마다 갈등이 조금씩 있기는 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내 눈썹이 이렇게 생겼구나 들여다보고, 어떨 땐 “좀 귀엽게 생겼군”하기도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조금 더 살을 빼려고, 조금 더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 조금 더 건강한 몸을 갖고 싶고, 조금 더 건강한 피부를 갖고 싶어서. 그게 아름다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덮고, 가리고,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빛이 나는 사람. 그건 마음도 몸도 건강한 사람, 그래서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사람에게서 나오는 빛이자 매력이다.



영화 <풀잎들> 중에서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의 여자 캐릭터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나의 변화를 감지하게 해 준 영화였다.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는 그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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