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전>을 보고
#지혜의영화 #일요일엔영화를
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인 <유전>이 궁금해졌다. 호러 장르를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인데 호기심이 다른 때와는 다르게 강하게 나를 이끌었다. 물론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봐야 했다면 그 호기심이 나의 두려움에 졌을 테지만.
마침 왓챠에 <유전>이 올라왔다. 뭔가 섬뜩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나를 노려보고 있어 잠시 망설였지만 멈추면 되니까. 보다가 정 안 되겠으면 꺼버리면 되니까 하고 나를 안심시키며 플레이 버튼에 손을 갖다 댔다. 괜히 딴짓을 하면서 힐끔힐끔 봤다. 그 힐끔거림의 시간이 점차 짧아졌고 이내 집중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미리 겁을 먹어서, 그만큼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이 영화가 끔찍하게, 견디지 못할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다. 물론, 12인치 화면에서 전해지는 공포는 영화관의 큰 스크린에서 전해지는 공포와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참고로 나는 한국 공포 영화 중에서 <기담>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중간쯤에 영화관에서 나와버린 적이 있다. 다른 것보다 '소리' 즉 음향 효과 때문이었다. 끼익거리는 소리,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사람의 심장을 내리치는 소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유전>은 그런 장치로 사람을 놀래는 영화가 아니었다. 놀라 뒤로 자빠지게 하는 영화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계속 다리를 떨거나 엉덩이를 들썩이거나 목덜미를 만지거나 한숨을 쉬게 만드는 영화였다. 끊임없이 나를 불안 위에 올려놓고 내려주지 않는 영화였다.
시작부터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악이 흐르고 작은 모형의 방들을 누군지 모를 시점으로 훑어나가는데 마치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의 움직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존재가 한 가족의 일상 위로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처럼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상한 일들이 나열된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딸, 비둘기의 머리를 가위로 잘라내는 소녀, 엄마의 환영을 보는 딸 등등.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저러는 걸까, 어디쯤에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계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무서우면서도 은근 기대하면서.
하지만 좀처럼 내가 두려워하는, 기대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방심하며, 집중하며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고 있을 때, 잠시 느슨해져 있을 때 ‘방금 뭐야?”하며 알아챌 수도 없을 사건 하나가 훅 지나가버렸다. 그때 잠깐 숨을 멈추고 스톱 버튼을 터치했다. 그 사건을 발생시킨 당사자와 내가 아마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찰리의 사고 장면에선 대부분 이런 반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플레이 버튼을 터치하고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탄식의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상황을 만들 수가 있지, 감독은? 잔인하다고 해야 하나, 유능하다고 해야 하나...... 여태껏 본 적 없는 공포를, 직접 보여주지도 않는데 느꼈다. 오히려 나의 상상이 더욱 나를 공포스럽게 했다. 이 영화 통틀어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 무서운 것을 보여줘서 무서운 것이 아닌 벌어진 상황 자체가 끔찍했다. 지금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장면의 상태가 얼마나 엉망진창일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영화는 급변한다. 잔잔한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불안으로 바뀌었다. 올라가는 코스에 놓여 있던 롤러코스터가 내리막길을 맞이한 것이다.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점점 또렷해진다. 불행한 가족의 이야기. 불행을 이어 받은 가족의 이야기.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
영화 <킬링 디어>가 떠올랐다.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해피 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에서, 가족 구성원이 희생된다는 것에서, 그 희생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과 같은 상황들에서. 끊임없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비슷했다.
가족은 단어만 들어도 사람을 따듯하게 만들어주지만 때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도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마치 저주받은 것처럼 이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것.
가족으로 인한 불행은 좀처럼 극복되기 어렵다. 대를 끊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많은 문제들이 깊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그것 단 하나의 이유는 아니지만 대부분 포함된다. 학대받은 사람은 학대를 물려줄 확률이 높고, 우울증을 겪은 사람은 우울증을 물려줄 확률이 높은 것이 하나의 예이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불행을 겪으면 모두가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이 가족의 덫이고 저주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이야기를 마냥 희망차게만 마무리 짓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랐다. 이 세상 모든 가족들이 행복하고 화목한 것만은 아니니까. 오히려 가족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가족에게 더욱 상처받고, 가장 기댈 수 없는 존재가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 가족의 어두운 면을 이 영화는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로 잘 전달한다.
이 영화를 끝까지 잘 보아냈다고 해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최신작인 <미드소마>를 영화관에서 볼 용기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짝 고민했다. 용기를 내 한 번 보러 가볼까 하고.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다. 그만큼 멋진 영화였다. 굳이 이 영화를 호러 영화로 구분 짓고 싶지 않을 만큼. 끝내 <미드소마>는 내가 보러 가기 전에 영화관에서 막을 내리겠지만 내가 안 본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왓챠든 넷플릭스든 어디든 작은 화면으로 옮겨지자마자 볼 것이다. <유전>을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