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시지 않은 우유의 양

by Ann








바닐라 라테가 아닌 다른 음료를 시켜야 했다. 이 가게에서 내가 마신 음료는 97%가 아이스 바닐라 라테인데, 이제 와 다른 걸 시키자니 뭐가 있는지조차 몰라서 메뉴판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무슨 커피가 있는지도 잘 몰라 마치 설명서를 읽듯 정독하다가 이름이 마음에 드는 커피를 골랐다. 아마 주문을 받으시는 분이 ‘어? 바닐라 라테가 아니네?’하고 속으로 의아해했을 것이다.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유와 생선과 유제품을 마음대로 먹겠다는 건 아니다.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오래 하고자 한 선택일 뿐 우유, 달걀을 포함한 유제품은 되도록이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 1년 360일 정도 마시던 아이스 바닐라 라테 말고 다른 음료를 시키면서 떠올렸다. 내가 오늘 마시지 않은 우유의 양은 얼마큼일까. 그만큼의 고통을 그들에게서 덜어줄 수 있는 걸까? 이만큼의 양이 일주일, 한 달, 1년 동안 쌓이면, 그 정도이면 덜어줄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젖을 먹는, 그것도 다른 동물의 젖을 빼앗아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우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송아지다. 그러나 인간은 이 자명한 이치를 무시하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부터 우유를 착취한다.
먼저 소를 강제로 임신시킨다. 한 손은 소의 항문을 통해 직장 안으로 집어넣고, 한 손으론 성기 안으로 인공수정 관을 자궁 입구까지 억지로 밀어 넣는다. 이때 암소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거치대를 결박시키는데, 외국에서는 일부 업자들이 이 장치를 ‘강간대’라 불렀다


<아무튼, 비건>에서 우유를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우유를 먹는 행위는 다른 동물의 젖을 빼앗아 먹는 행위이고, 그 젖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말도 못 하게 잔인하다. 글을 읽으면서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우유를 보면 이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강간대’. 마음이 약해질 때도 이 단어를 떠올린다. 여전히 우유가 들어간 음료, 음식을 마시고 먹지만 결코 전과 같지 않다. 죄책감이 뒤따른다. 찜찜함이 더해진다.


달달한 바닐라 라테를 시키지 못해 쌉쌀한 커피를 시켜놓고 내려다보면서 오늘도 이만큼의 우유를 먹지 않았어! 하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갈 것이다. 바닐라 라테보다 쌉쌀한 커피가 더 좋아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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