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래희망은 '멋있는 할머니'다. 멋있게 나이 들고 싶다. 멋지다는 것,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이 뭘까. 꽤 오랜 시간 곰곰이 고민해보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연인 혹은 배우자, 오래된 만년필, 오래된 노트, 오래된 집, 오래된 가구, 그중에서도 책상, 오래된 가방 등등 오래된 것들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뢰가 간다. 사람도 물건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곁에 둘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이고, 금방 질려하지 않고 오래 두고 본다는 뜻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몸매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이니까. 노력을 해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스타일만은 변치 않는, 포기하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청바지에 운동화가 어색하지 않고 지금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도트 무늬 원피스가 어색하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스타일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젊고 유연한 사고를 유지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 서점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할아버지께서 따뜻하고 향기로운 라테를 앞에 놓고 책을 읽으시며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난 내 앞에 놓여있는 책 보다 그분을 훔쳐보느라 더 바빴다. 그 할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엇인가에 몰두해 계시는 모습이 무척 멋져 보였다.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늘 흘려보내고 또 받아들이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늘 무엇인가를 하고 그것에 몰두해있는 나였으면 좋겠다. 그 일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생각에 가장 어려운 것 같은 게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이 부끄러움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무렇게나 행동하시는 어르신분들을 꽤 많이 봤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걸까. 배려와 예의는 젊은 사람들의 몫으로 양보하고 권위와 아집, 편의는 독점하시는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그 나이가 되면 그럴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물론 이해하려고 늘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부끄러움을 알고 젊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나이를 잊어야 내가 나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 것 같다. 나이를 이용해 이기려고 하거나 편해지려고 하는 어른은 되고 싶지가 않다. 물리적인 나이를 잊고 아직 열일곱에 머물고 있을 그 마음의 나이만 기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든 받지 않든 사람을 빛나게 한다.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반짝인다. 목소리도 명랑하다. 주름 가득한 얼굴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반짝반짝거리는 눈빛과 명랑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장래희망이 대통령인 사람들보다 더 이루기 어려운 장래희망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아직 난 멋진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일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거다. 최대한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열심히 노력할 거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에는 큰 고통이 따를 것 같지만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한 과정은 꽤 즐거울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