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그녀와 나누는 고해성사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세 시를 읽고

by Ann


무제.png 오지은 - 익숙한 새벽 세 시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한 이후로 좀처럼 마음에 맞는 에세이 집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는 가장 읽기가 만만한 것이 에세이 집이었는데 지금은 제일 읽기 어려운 것이 에세이 집이다.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스트레스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에 비해 에세이 집을 사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 에세이 집을 찾고 싶고, 읽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커진다.



그러다 얼마 전 마음에 드는 에세이 집의 제목을 발견했다. 새벽 세 시라는 시간이 나를 편안하게 끌어당겼다. 나에게도 아주 익숙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새벽에 많이 깨어 있는 소녀였다. 그리고 여전히 의식적으로 눕지 않으면 그 시간까지 깨어 있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제목에 끌린 나는 서서 일단 읽었다. 집중 시간이 길지 못한 나는 책 고르는 것이 쉽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책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약 10장 정도를 읽고 책을 덮은 후 계산대로 갔다. 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목이 주는 호감이 문체에서도 그녀의 생각에서도 이어졌다. 이 책의 온도는 굉장히 낮았고, 마치 겨울처럼, 밝기는 꽤 어두운 편이었다. 공간으로 표현하자면 해가 잘 드는 2층 집에 암막이 쳐져 있는 창이 큰 방과 같은 분위기였다. 비슷하지만 춥고 습한 지하실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충분히 밝은 곳에서 자의에 의해 어둡게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그렇게 선택한 것 같았다.



요즘 마음이 힘이 들 때는
남의 단점이 보일 때인데,

더 괴로워지는 원인은

내 단점들 때문이다.

굴속에 들어가고 싶다.



난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역시 에세이는 작가와의 교감이 잘 된다고 느껴져야 잘 읽히고 재미있다. 그녀는 꽤 어두웠고 꽤 차가웠다. 우울증도 앓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보는 나도 꽤 어둡고 차갑고 우울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녀는 어둡고 차갑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그렇게 어둡거나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따뜻하고 유쾌하고 밝은 부분들이 저기 멀리 있는 그녀의 울타리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는 나 또한 아무리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려고 해도 그런 울타리가 있기 때문에 그럴 위험을 스스로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나보다 열 발자국 앞에 서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혼자 만의 생각이지만.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에세이라는 것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깊은 내면의 얘기를 꺼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고백을 하듯이 누군가가 보고 있는, 볼 것이지만 마치 아무도 보지 않을 것처럼 뱉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책의 분위기가, 그녀의 분위기가 좀 어둡다고 해서 그녀의 하소연을 듣는 느낌은 아니다. 어떤 에세이를 보면 '난 이만큼 우울하고 이만큼 힘들어요. 어떠 어떠한 것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죠. '하며 지나치게 남 탓을 하거나 징징거리는 경우가 있고 지나치게 자책을 해 읽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살짝 떴다가 동그랗게 떴다가 하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태가 되고자 몸부림친다. 성장하기를 원하는 것도 완전히 변화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나아지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몸부림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 같았다.



가만히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꿈에서 깨어 한 시기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형편없었다. 말투도, 생각도, 성격도, 생활습관도, 전부. 나는 매 순간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게나마 이룬 것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며, 돌이켜보면 몰라서 할 수 있던 것들이 태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녀와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앗, 당신은 그런 것이 부끄러웠나요? 저는요......', '아 당신은 그게 힘들었나요? 저는요......', '아, 당신은 그렇게 극복하려고 했나요? 저는요......'. 그렇게 서로가 스스로를 바라본 느낌과 극복해야 하는 부분들, 고쳐야 하는 부분들,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들에 대해 털어놓고 때론 북받쳐 울기도, 때론 별거 아니어서 웃기도 하는 그런 고백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혐오스럽게 느껴지던 나의 어떤 부분을 귀엽게 바라봐주게도 되고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게 된다. 이런 대화에 늘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화를 나눌 사람도, 시간도 좀처럼 없는 게 현실이고 그게 참 안타까웠는데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세이를 읽는 최고의 재미를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맛 보았다.



끝까지 읽고 나면 한 사람의 성장을 지켜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주 큰 성장은 아니지만 첫 장의 그녀보다 맨 마지막 장의 그녀가 조금 더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딱 한 뼘 정도의 성장. 딱 그 정도. 그 한 뼘의 성장이 성장판이 닫혀 있는 어른에게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적지 않은 감동도 느꼈다. 나도 훗날 돌이켜 봤을 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시점에서 한 뼘의 반의 반의 반만큼의 성장이 있었기를 살짝쿵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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