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배운다는 것
'아이코, 마스다 미리 작가님 미안해요. 내가 작가님을 잠시 멀리하다니요. 제가 작가님한테 지치다니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책, <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사실 마스다 미리의 책은 꾸준히 읽어왔다.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그녀의 팬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어느 순간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같은 톤의 같은 느낌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확실히 그녀의 책은 에세이 형식보다 만화 형식이 훨씬 재미있고 귀여운 것 같다. 나의 취향으로는 말이다. 최근에는 그녀의 에세이를 주로 읽었는데 아마 그 탓에 '아, 이제 마스다 미리의 책은 좀 질린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이 책을 잠깐 틈이 나 읽었는데 어머나 세상에.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반가움이 들면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녀만의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가 원했던 그녀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어쩜 그렇게 사람의 약하고 여린 부분들을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약하고 여린 부분들을 어쩌면 그렇게 귀엽게 표현을 할까. 마스다 미리 작가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가들 중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작가가 아닐까 나 홀로 생각해본다. 그 정도로 인간을 선하고 귀엽게 표현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뿍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 책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작은 있고 끝은 없는 영어 공부. 새해가 되거나 영어 때문에 망신을 당했거나 그냥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김없이 학원을 등록하곤 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표 선수인 나. 하지만 좀처럼 아름다운 끝을 맺기가 어려운 것이 영어 공부이다. 사실 언제 끝이 났는지도 모르게 끝나 버리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한심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마스다 미리는 귀엽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한다.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 무엇에 대해 이해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이해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알고 싶은 마음과는 조금 다른, 좀 더 마음 깊은 곳의 자신을 향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제 막 영어를 시작한 미치코 씨를 보고 있으면 빨리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 진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다르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부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어떤 이야기든 '영어로 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로 말하는 것이 목적이 된 것이다. 예전에 영어를 배울 때 의도치 않게 선생님께 거짓말을 한 적이 많다.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얘기한다던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한다던가. 단지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단어 중에서만 골라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문법을 외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차!' 싶었다. 영어는 단지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일 뿐인데 내가 너무 도구에만 집중해서 배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문법을 배우고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지 제일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진짜 중요한 것을 모른 채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어에 대한 아니 영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흥미는 LTE급으로 떨어지게 되고 수학의 집합 부분처럼 영어의 1형식 문장들만이 내 머릿속에 남게 됐다.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질 않았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예요.
'영어로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영어를 쓰는 사람과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지!
이 책은 나처럼 영어 배우기 자체에 자꾸 흥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기 전 읽는 '입문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지치지 않는 기초 체력을 만들어놓는 단계라고 할까. 이 책의 주인공인 미치코 씨는 영어를 배우려다가 영어를 이해해야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사람을 이해하듯 잘 몰랐던 것에 대해 새로 알게 되듯 말이다. 이것이 마스다 미리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구나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미치코 씨와 함께 영어를 이해해가며 이 책을 읽으니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 흥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어는 여하튼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가장 먼저 전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단지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배우는 재미를 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미치코 씨는 영어를 배우는 매 순간순간 천천히 하나하나씩 이해해가며 즐거워한다. 영어의 어순에 대해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하나 둘 씩 알아가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더불어 자신이 속한 일본의 언어에 대한 이해까지도 더 깊어진다. 비록 진도는 느리지만 그녀는 '진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가르치는 시다마 씨도 미치코 씨의 태도를 통해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고 미치코 씨는 시다마 씨에게 모르던 부분들을 배우면서 채워나간다. 두 사람은 공부가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듯이 그 시간을 보낸다. 겸손한 자세로 가르치는,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배우는 선생님과 제자 관계를 보여준다. 학생과 제자가 저 두 사람만 같다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스다 미리에게 다시 꽂혔다. 그리고 영어 공부에도 다시 꽂혔다.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과정이 더욱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로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다. 배우는 것에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만. 영어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의 영어 공부 목표로 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