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쿠다 미쓰요의 종이달을 읽고.
나는 늘 물을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물어볼 것이 항상 많았다. 심지어 나의 감정까지 타인에게 묻곤 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화가 나야할까?" "내가 그때 화를 냈어야 했을까?"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조차 확신을 갖지 못했다. 나 스스로에 대해 신뢰감이 전혀 없었고, 그로 인해 나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늘 불안해했다.
그 불안을 모든 갈등을 피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갈등이 생길 것 같은 상황에선 언제나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상대가 늘 맞는다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맞아, 내가 틀린 거야.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야.' 그래야 내가 참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 상대는 점점 나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기 시작했고 나는 이리저리 휘청휘청 바람 인형처럼 휘둘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 내가 행복한 것은 상대가 행복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상대가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배려심이 참 깊다고 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려는 나의 행동을 보고 말이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전에 '나'가 있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행복한 일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뿌리에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주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내 것이 없었다. 나는 상대에게 맞출 것이 있었지만 상대가 나에게 맞출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과 있으면 이 사람 것, 저 사람과 있으면 저 사람 것. 나의 삶은 그렇게 갈기갈기 찢겨나가 형체가 없어져 있었다. 늘 자신의 주관대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또렷한 형체를 가진 삶을 사는 친구들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마음대로 화를 내고,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 내리고, 삶이 시끌벅적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그래서 늘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훔쳐보고 귀 기울이고 따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난 네가 이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10년 만에 알았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그 음식을 입에 넣지 못했다. 꽤 충격적이었다.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랬구나. 내가 그 친구들에게도 그랬구나. 충격에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또 그들이 불편해할까 봐 아무 내색 안 하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러나 그날 그 친구의 질문은 나에게 아주 중요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돼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게 됐으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으니까.
원인은 모르겠다. 왜 그렇게까지 됐었는지. 왜 나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었는지. 왜 꿋꿋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두 발로 우뚝 서지 못했었는지. 누구나 다 나처럼 모르고 서툴고 틀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지. 나만 틀리고 나만 서툴고 나만 모른다고 생각하고 쪼그라들었었는지. 왜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했었는지. 그리고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었는지.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고 그들의 미움을 두려워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것을 놓고 자꾸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손에 가득 차게 쥐고 있어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해도 성취를 느끼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가짜였다. 다른 사람들로 인해 짜깁기 된 가짜.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돼야겠다고, 진짜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날부터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훗날 지금의 나는 염연히 내 인생의 주인이 됐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는 그렇게 느낀다. 솔직히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그것을 말하고, 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혹은 싫어하는 것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전보다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모든 것의 기준은 '나'가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고 맞추기도 한다. 때론 타인에게 맞춰달라고도 하고 양보해 달라고도 하고 배려해 달라고도 한다. 아직 여전히 서툴다. 어렵다. 하지만 내 삶이 내 손에 만져져서 괜찮다. 내 손 안에 있어서 괜찮다. 내 손 안에 있는 것이 내 삶이어서 이제는 괜찮다. 부족해도 그 나름대로 만족해하고 많은 것들을 해내지 못해도 뿌듯하다. 진짜니까. 내가 만든 진짜 '나'니까.
리카가 자신의 삶을 타인으로부터 되찾아 왔다면 이런 파국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카가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스스로가 주인이었다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타지 않았을 텐데. 리카는 과거의 나, 내 삶을 되찾아오지 못한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리카는 결국 돈에, 남자의 인정에 휘둘리며 달리다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원치 않는 시기에 멈추게 된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렇지만 늦었더라도 리카가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길 응원한다. 이전의 가짜 삶에서 빠져나와 진짜 삶을,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제 꿈에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리카에게는.
리카는 아키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을 신경 써서가 아니란 걸 인정했다. 아키처럼 하나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기, 이제 아이는 포기하는 거야? 하고 마사후미에게 확인하지도 않은 채 1년이고 2년이고 지났고, 남편의 말에 위화감을 느껴도 그 진의를 마사후미에게 묻지도 못했다. 그저 어제와 똑같은 날을 답습하듯 살고 있다. 그런 자신의 하루하루를 아키에게는 도저히 얘기할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아키의 얘기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답장도 못하고, 전화도 못 하는 것이다.
"꿈같아요. 내 인생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맞은편에 앉은 고타가 말했다. 어째서 사람은 현실보다 좋은 것을 꿈이라고 단정 지을까. 어째서 이쪽이 현실이고, 내일 돌아갈 곳이 현실보다 비참한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리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고 "마지막이란 건 없어." 고타에게 웃어 보이며 잔에 남은 샴페인을 마저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