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원고 청탁을 받았다. 이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놀란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다니, 이런 기회가 있다니. 자주 있는 일도 아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닌데 매번 놀라고 설렌다.
서점 사장님은 내 장래희망에 없었다. 내 장래희망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선생님 (어린이라 품을 수 있는 꿈. 지금은 시켜줘도 안 함, 못 함)
작가
라디오 DJ
선생님이란 직업은 유치원 들어가기 전까지 가졌던 꿈이고 작가와 라디오 DJ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가졌던 꿈이다. 둘 다 포기한 순간이 있었다. 작가는 '등단'이라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포기했고 라디오 DJ는 연예인 혹은 아나운서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했었다.
사실 치열하게 노력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다. 등단? 내가 어떻해? 연예인? 아나운서? 그걸 내가 어떻게 해? 그 길밖에 없는 줄 알았고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쉽게 단념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나는 그 꿈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 방법을 포기한 거였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꾸준히 내 꿈을 향해 나름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작가라는 꿈을 접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글을 썼다. 싸이월드 일기장,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포스트, 다음 브런치(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썼다. 물론 나만의 노트에도 빼곡하게 글을 채웠다.
라디오 DJ란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방송국에서 교통비 정도의 금액만 받고 라디오를 진행했었고 2019년에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어떤 이는 내게 라디오를 듣는 것 같다고 리뷰를 달아줬고 또 어떤 이들은 내게 사연을 보낸다. 음악을 내보내는 디제이는 아니지만 내가 꿈꿔온 그 일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나는 유명 작가가 아니다. 책 한 권 내 이름으로 내본 적 없다. 하지만 종종 타인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도 하는 작가다. 나는 유명한 디제이는 아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든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알고 보니 나는 이미 내가 꿈꿨던 일들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매일매일 나를 놀라게 한다. 내게 마감해야 할 글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그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꿈을 이루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저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언젠가 꿈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결국 내가 어느 위치까지 올라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오늘도 글 한 편을 이렇게 썼다. 오늘을 또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