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가까워져 오는 소리들로 잠이 깬다. 어떨 땐 뚜이의 소리에, 어떨 땐 엄마의 소리에, 어떨 땐 슬기가 화장실 들어가는 소리에. 핸드폰을 들어 올려 잠든 사이에 온 알람들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을 휙휙 훑어보고 다시 내려놓는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불을 매트 위에 펼치고 발끝에 켜진 채 회전하고 있는 작은 선풍기를 끄고 책상 위에 올려둔 뒤 매트를 접어 벽 쪽에 붙인다.
방문을 열고 나가 뚜이를 확인한다.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보고 물 한 잔을 컵에 따라 입을 적신 후 유산균을 먹는다. 냉장고에서 당근과 파프리카 조금을 꺼내어 먹고 화장실로 간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켜고 샤워를 한다. 샤워하는 순서는.......
샤워 후 방으로 들어와 공기청정기를 켜고 화장대 앞 태블릿을 켜고 넷플릭스를 연다. 어제 보지 못한 드라마를 재생한다.
화장솜에 스킨을 적셔 피부를 정돈하고 에센스를 바르고 로션을 바른 후 선크림을 바른다. 눈썹을 그린다. 헤어 에센스를 손에 덜어 머리에 도포하고 드라이기를 연결해 머리를 말린다. 정수리를 말린 후에 머리카락을 말린다. 다 말린 후 드라이기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다.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 점심을 먹는다. 더 일찍 준비를 마치면 청소기를 돌리고 뚜이 화장실의 감자와 맛동산을 캔다. 이 두 가지 일은 종종 순서가 바뀐다. 나 대신 동생이 할 때도 있다.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좀 쉰다. 그 사이 뚜이의 영양제를 챙긴다. 이것 또한 내가 할 때도 있고 동생이 할 때도 있다. 양치질을 한다. 입을 옷을 고르고 다리고 옷을 입는다. 뚜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출근을 한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탄다. 키는 왼쪽 핸드폰은 오른쪽에 두고 시동을 켠다. 음악이 저절로 재생된다. 맘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그냥 두고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이면 다른 음악으로 바꾼다. 출발.
작업실에 도착하면 짐을 제자리에 놓고 화분들에 다가간다. 흙을 찔러본다. 요리조리 살피고 만져본다. 물이 마른 아이들은 물을 준다. 선풍기를 켠다. 식물들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인센스에 불을 붙인다. 이건 내가 할 때도 있고 동생이 할 때도 있다.
커피를 탄다. 이것도 순서대로.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커피를 한입 마신다. 일력 한 장을 떼어낸다. 커피를 한입 마시면서 창가를 바라본다. 창을 가득 채운 나무를 바라보고 내 식물들을 본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어 찰칵.
노트북을 내 앞으로 끌어와 뚜껑을 들어 올린다. 두둥! 켜지고 애플뮤직 앱을 켜 음악을 튼다. 처음엔 신나는 음악. 사파리를 열고 네이버를 띄운다. 연애 뉴스를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을 체크하고........
보내야 할 택배가 있으면 택배 작업을 한다. 없으면 내가 읽어야 할 책을 꺼내어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지우고 채우고.
퇴근 시간이 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덮고 노트북도 끈다. 책을 제자리에 놓고 텀블러를 세척한다.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 뒤 창문 두 개는 열고 하나는 닫는다. 에어컨, 선풍이가 꺼져있는지 확인한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작업실에서의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자마자 뚜이와 상봉식을 하고 집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간다. 물을 한잔 마시고 소파에 눕거나 앉는다. 뚜이가 저녁 먹는 걸 구경하거나 핸드폰을 켜 다른 이들의 삶을 구경한다.
저녁을 먹는다. 소파에 앉아 뉴스나 사건반장이나 못 본 예능 프로그램이나 아무거나 채널 돌리다가 맘에 드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잠시 본다. 소화시키는 시간.
어느 정도 소화가 되고 특별히 흥미 있는 티비 프로그램도 없으면 방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본다.
운동하기 전 양치질을 한다.
운동을 한다. 마루에서 동생과 함께 유튜브를 틀어놓고 30분 동안 몸을 흔든다. 땀이 난다. 운동을 끝내고 잠시 앉아 귀여운 영상 혹은 재밌는 영상을 보며 땀을 식힌다.
샤워를 하고 화장대 앞에서 아침에 보던 드라마를 보며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마루로 나와 뚜이와 시간을 보내며 티비를 본다. 뚜이가 잠들 때까지. 그 사이 아빠가 퇴근하신다. 인사를 나눈다.
뚜이가 자려고 자리를 잡으면 그제야 동생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접어둔 매트를 바닥에 깔고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는다. 읽다가 내려놓고 선풍기를 켜고 불을 끄고 눕는다. 팟캐스트를 재생하고 눈을 감는다. (요즘은 누워서 핸드폰을 하지 않는다. 눈 건강에 예민해졌기 때문에......)
누워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잠이 든다.
나의 하루다. 중간에 단계가 더 들어갈 때도 있고 빠질 때도 있다. 쉬는 날은 또 다르고 갑자기 다른 일이 생길 때도 있다. 보통 이렇단 얘기다. 갑자기 이렇게 적어보게 된 건 영화 <퍼펙트 데이즈>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기를 혹은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나니 저절로 나의 하루가 스르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매일 똑같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내 일상의 틈이 하나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다른 하늘, 하늘의 구름, 햇살, 온도, 소리, 식물들의 모습, 내 자리, 보는 책, 내 생각, 느낌, 뚜이의 귀여움...
사는 건 점점 지루해진다. 잘 산다는 건 점점 지루해져만 가는 일상에서 나만의 틈을 찾아내 작게 자주 미소 짓는 것 아닐까.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잘 나이는 것 아닐까.
오늘은 내가 탄 오트 라테가 어제보다 더 고소하다. 오트우유 양을 조금 다르게 한 탓일까. 후훗. 어색하지만 미소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