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용서라는 것에 대하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고.

by Ann

다른 친구들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하는 말에 늘 귀 기울여주고, 내가 하는 말을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나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게 봐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얘기들과 함께 나는 그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내 곁에 머물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무척 고마운 사람으로.


친구들의 얘기도 틀린 것은 아니었을 거다. 분명 좋지 않은 부분들을 봤겠지. 그리고 느꼈겠지. 하지만 분명 나에겐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누군가는 그에게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서운한 일들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는 그 반대의 존재였다.


나는 어떨까. 나도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돼 있을 것이고 좋은 사람이 돼 있을 것이다. 내가 비난했던 사람의 입장에 어느새 내가 서 있을 때도 있고 나를 진절머리 치게 했던 사람의 행동을 내가 똑같이 해놓고 뒤늦게 깨달은 적도 있고 내가 받았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준 적도 있다.


내가 지었던 슬픈 표정을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보게 되고 내가 들었던 몹쓸 말들을 나의 목소리로 듣게 됐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란 있을 수가 없구나.'


이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 후 나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을 조금씩 용서하게 됐던 것 같다. 그 사람들도 분명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었겠지, 나에겐 나쁜 사람이었지만...








나는 이 영화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인 사치가 부모님을, 또 그녀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이야기 말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Our Little Sister, 2015 0000698556ms.png 맏딸 사치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장면.


"아버지 행복하게 살았나 봐. 장례식에 사람들도 많이 오고. "(치카)

"자상한 분이셨다고 다들 그랬어."(요시노)

"사람은 좋았지만 한심했지. 친구 보증 섰다가 빚더미에 앉고, 동정심으로 금세 사랑에 빠지고. "(사치)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Our Little Sister, 2015 0000740429ms.png 맏딸 사치가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에 빗대서 친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장면.


"요코라는 분, 우리 엄마와 닮았더라. 사실 그 여자 병원에 별로 안 갔을 거야. 잠시 와서는 갈아입을 옷만 주고 금방 돌아가버렸을걸. 그래 놓고 혼자서 간병 다 한 것처럼 굴어."(사치)



사치는 두 여동생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훨씬 많고 또렷하다. 그렇다 보니 두 동생보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의 초반부에 사치는 동생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사람은 좋지만 한심한 사람으로, 어머니는 무책임하고 여리기만 한 사람으로 사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흘러갈수록 사치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통해, 갑자기 생긴 이복동생을 스즈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 볼 기회를 갖게 된다. 부모님에게 향해있던 원망의 눈길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별거 중이긴 하지만 아내가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엄마 때문에 언니들이 고통받았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그래서 마음껏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못하는, 자신을 쏙 빼닮은 어린 스즈의 모습을 통해 사치는 알게 된 것 같다. 누구나 다 삶의 이면이 있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자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에선 그렇게 모순적인, 이중적인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사람과 상황과 사물의 뒷면을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사치로 하여금 비로소 그것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세 자매와 아내에겐 고통을 줬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소중한 추억을 선물했고, 어머니는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세 자매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딸이자 맘 여린 여자일 뿐이고, 스즈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불륜녀이지만 스즈에겐 그립고 소중한 사람이다. 사치의 실수투성이 동료 간호원 아라이 씨는 알고 보니 누구나 하기 어려워하는 엔젤케어 일을 담당하고 있었고, 세 자매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집은 어머니에겐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동생들에겐 좋은 언니이고 한 남자의 사랑하는 여자이지만, 그의 아내에겐 불륜녀일 뿐인 것이다.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치는 스즈가 온 이후부터 많은 것들의 이면들을 보게 되고 그것을 통해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상처 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된다. 그 용서를 통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어 간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는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스즈를 바라보며 두 동생들에게 얘기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Our Little Sister, 2015 0007305842ms.png
"아버지... 진짜 원망스럽지만 다정한 분이신가 봐."(사치)

"왜?"(요시노)

"이런 동생을 우리한테 남겨주셨잖아."(사치)


완벽하게는 될 수 없겠지만 이미 그녀에게 용서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장면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차분하고 고즈넉하게 한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미 내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앉아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나지막한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누구를 비난하겠습니까' 하고.


사람은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임과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내가 누구에게 감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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