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버티가 로그에게 마음을 연 이유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고

by Ann
movie_image.jpg 영화 '킹스 스피치'



우정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말들. 과연 그 단어들이 이유라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걸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얘기해주겠니."

"쓴소리 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쓴소리는 순도 100%였을까? 단 1%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자신들의 편리함 위한 바람, 자신들이 느꼈던 서운함을 풀 목적 즉 욕심이 섞이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상대를 위하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차라리 슥 건네는 한 마디의 쓴소리는 좀 낫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의 충고대로 하지 않는다고 혹은 그대로 되지 않는다고 윽박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왜 그렇게 윽박지르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하는 소리는 '너를 위한 거야'다. 그 윽박으로 인해 온몸이 굳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는 곧 그것이 폭력과도 같은 행위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게 원치 않는 충고 하기를(어떤 방식이든)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의 상황도 좋아할까?



부모님, 선생님, 친구, 애인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이 바로 원치 않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배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들의 마음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충고는 즉 원치 않는 충고는 왜 폭력일까. 왜 기분이 매우 나쁠까. 내가 원했던 충고와는 왜 다를까. 그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나라는 사람 전체를 바꾸려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를 바꾸려고 들 때 그 상처는 더욱 커진다. 마치 '이것만 고친다면 너를 더욱 사랑할 텐데...'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버티(콜린 퍼스)는 연설을 비롯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심하게 더듬는다. 심지어 딸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그랬던 그가 어떻게, 왜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에게는 마음을 열고, 그의 앞에서는 좀 더 편안하게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 라이오넬 로그 치료사는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을 억지로 고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를 모두 들어주고 이해해줬으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원하는 것에만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아무도 알려고 들지 않았던 그의 말더듬증의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가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그 어떤 충고도 없었다. 말 없는 위로와 따스한 눈빛만 있었을 뿐. 버티는 그런 라이오넬 로그를 신뢰하게 되고 마음의 문을 더욱 활짝 열고 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치료해나간다.



이렇게 신뢰를 쌓아가던 둘 사이에 딱 한 번의 갈등이 생기는데 바로 치료사인 로그가 버티가 원하지 않는 충고를 했을 때였다. 왕인 형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퇴위 소동을 벌이고 있어 화가 난다고 버티가 얘기하자 라이오넬 로그가 당신도 자질이 있으니 왕을 능가할 수 있다고 무엇을 겁내냐고 충고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크게 싸운다. 집으로 돌아온 라이오넬 로그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부인에게 고객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크게 될 사람인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말한다.


"무슨 일 있었어요?"
"고객과 갈등이 좀 있어."
"별일이네. 왜요?"
"겁을 먹었어. 자기 그림자에 짓눌려서.
"보통 다 그렇잖아요?"
"크게 될 사람인데 말을 안 들어."
"크게 되기 싫은가 보죠. 당신 욕심 아녜요?"
"내가 선을 넘었군."
"사과해요, 그럼 되지."



로그는 바로 사과를 하러 간다. 자신의 욕심을 인정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당신 욕심 아녜요?



'애정이 담긴 충고'는(상대가 구한 적 없는) 나에게는 굉장히 모순적으로 들린다. 상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니까.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차라리 '당신의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서운했어요, 내가 힘들어요', '당신이 이렇게 돼야 내가 좋아요.'라는 말에 훨씬 애정이 느껴진다. 적어도 상대를 부정하거나 탓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아니니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못난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고 상대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즉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나도 못난 점을 갖고 있고, 상대도 마찬가지다. 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게 사람이고, 건강상의 이유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먹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든 더 쉬운 일이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누굴 만나든 적어도 하나 이상 아쉬운 점이 있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그렇게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는다. 설사 부탁을 해 온다고 해도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도 고치지 못한 결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도 이미 스스로의 결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버티는 아주 중요한 연설을 그럴듯하게 해낸다. 그의 치료사 로그 앞에서. 단둘만 들어갈 수 있는 방 안에서. 그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마이크 앞에서. 그를 변화시키고 그의 결점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윽박과 형의 조롱과 주변 사람들의 원치 않던 충고가 아닌 평생 친구로 남게 된 로그의 그를 향한 온전한 이해와 애정 어린 기다림이었다.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충고를 하기 전에. 정말로 상대를 위한 것인지. 조금도 나의 욕심이, 나의 바람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정말로 상대가 잘 되길 바란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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