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쌤통의 심리학을 읽고

by Ann


P20160323_105527000_E2585263-512A-4D08-9A44-11CBF1CB475B.JPG 리처드 H. 스미스 - 썜통의 심리학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심하게 괴롭힌 적이 있었다. 가해자가 따로 없어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나아질 수 있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준 상처의 여파가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혔다. 질투라는 감정은 꽤 무서운 것이었다.



어떤 모임에서 만난 한 여자에게 나는 무시무시한 질투를 느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 여자를 실제로 봤다면 이 정도로 질투를 느낀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꽤 평범한 편에 속하는 여자니까. 하지만 난 그 질투심으로 인해 일주일 동안 기분을 회복하지 못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내가 가지고 싶었던 면들을 그녀가 갖고 있다고 느꼈다. 마침 그때 그런 것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던 시기였다.



그때 내가 만나고 있던 남자는 시간만 끌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또 내가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나의 결점들의 완벽 버전을 가지고 있었다. 내 눈에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왜, 왜 저 여자는 가진 걸까. 왜 나는 가지지 못한 걸까.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 나는 너무 당황했고 괴로웠다. 그 자리에서도 괴로웠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괴로웠다. 스치듯 순간순간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은 많지만 이렇게 질투심에 불타올라 나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거나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어느새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그녀를 미워하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자신감을 잃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 강력했던 질투심도 시간이 지나자 점점 옅어졌다. 조금씩 조금씩 잊혀갔다. 그리고 어느 날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인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처음에 '누구?'라고 물었던 걸 보면 잊고 지냈던 것이 맞다. 그런데 그다음 이야기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런 사람이야??



지인이 전해준 소식은 그때 그렇게 깨가 쏟아졌던 남자와 결혼을 한 후 얼마 안 돼서 별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라고 했고, 곧 이혼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녀와 나는 전혀 친분이 없는 사이라서 걱정이 되거나 크게 신경을 쓰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그건 그런데...나는 속으로 통쾌해하고 있었다. 나는 '잘 됐다.'라고 얘기했다. 분명히 속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괜히 나는 신이 나 있었다.



그녀가 이혼을 한다고 해서 약간의 불행을 겪는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데 나는 그녀의 안 좋은 소식에 통쾌해하고 있었다. 통쾌한 마음에 그 당시에는 기분이 들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나, 정말 못났다.'하는 생각이 들면서 창피했다. 나는 이런 사람인가,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나 스스로에게 좀 실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얹혀있던 것이 쑥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처음 느껴본 강력한 질투심이었다. 그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거기에 죄책감과 나에 대한 실망감까지 더해져 그 덩어리가 더욱 커져버렸던 것 같다. 그때 이미 내가 이 책 '쌤통의 심리학'을 읽은 후였다면 웃으며 넘길 수 있었을 텐데. 죄책감과 실망감이라는 감정까지 더 얹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그런 본성이 숨어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줬을 텐데.



괜찮다. 그 감정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물리적으로 해를 입히는 건 절대 안 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건 괜찮은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질투심이 어느새 물러난다. 그저 나타날 수도 있는 거라고 인정해버리면. 그저 수많은 감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인정해버리면, 질투라는 감정과 크게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죄책감과 실망감이라는 감정까지 더 얹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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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일반적으로 적의를 띠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탐나는 것을 남이 누리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 또 그것을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우리는 질투를 느낀다. 다른 사람의 이점을 알아채고 그것을 갖고 싶다면,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걸 안다면 어떨까? 잠깐 동안은 불만스럽겠지만, 그것을 손에 넣는 길이 명확하다면 안 좋은 감정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질투라고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온건하다. 반면, 그 이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땐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사람을 질투한다. 설령 욕심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해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으니 우리도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상상하게 된다. 적대적인 질투를 느낄 때 우리는 원하는 것을 금방이라도 손에 넣을 것처럼 애가 타면서도, 이 소망을 이룰 수 없을 거라고 느낀다. 간절한 욕구의 좌절, 중요한 목표에의 차단은 분노와 적대감으로 이어지기 쉽고, 좌절감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면 쌤통 심리가 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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