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연애 이야기

by Ann
2016-04-16 13;33;39.jpg






연애는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걸까? 아니, 연애를 하면 행복해질까?



나의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시작하지만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들은 찰나, 힘든 시간들은 깊은 터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영원히 그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그런 연애의 찰나의 행복감과 영원할 것 같은 고통의 감정을 아주 잘 보여 준다. 남자 주인공이 좀 심하게 예민하고 지질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도의 차이가 약간씩 있을 뿐이지 모두가 연애를 통해 느끼는 감정의 종류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이 여자에게 남자친구로서 요구하고 싶은 것들을 죄다 말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그리고 네가 나에게 꼭 해주어야 하는 것들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인생이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가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산문집 주인공인 '석원'처럼. '이제 우리 연애 시작인 거야?'하며 들뜬 그는 금세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행복한 미래를 꿈꿨는데 그 행복으로 가기 위한 단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게 되자 엄청나게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마치 지난, 어렸던 나의 연애시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연애에, 연인에, 사랑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말았던 그 시절의 나를.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우선 쉼 없이 원고 독촉을 해오고 있는 출판사 에디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제야말로 다음 달 안에 완성된 원고를 보내주겠노라고. 최근 글이 죽어라고 나오지 않아 우울에 찌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제 누군가가 곁에서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니 그깟 책 한 권쯤 한두 달이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그가 나의 연인이 됐으니 공부도 더 잘 될 것 같고, 이제 나는 사랑받는 여인이니 행복할 것이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늘 든든할 것이고. 그렇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발끝, 손끝까지 온몸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혹은 그 사람의 사랑이 사라짐과 동시에 발톱까지 가득 채우던 자신감도 함께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외로움, 불안감, 초조함, 좌절감, 자괴감이 대신한다. 연애의 상대가 곧 삶의 의미였던 것이다.



석원의 나이가 그 시절 나의 나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좀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보통 마흔의 나이에 그런 독감 같은 사랑을 앓는 게 쉽지 않으니까, 연애 상대의 존재의 의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려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내가 이 책 안에 있었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나에게 행복만을 가져다줄 것 같았던 존재는 오히려 나에게 그것들을 빼앗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그럴 순 없다는 생각 사이에서 몸부림치느라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는 게 어린 나의 연애였다.



괴로웠던 연애에 대해 무조건 나이 탓만 할 수는 없다. 그저 경험이 부족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할 확률이 높은 나이니까. 나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감도 연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석원'은 정신적인, 정서적인 안정감이 좀 부족한 사람의 연애처럼 보였다. 그의 첫 번째 에세이를 봐서 나에게 그런 인상이 심어진 것 같다. 주도권을 상대에게 모두 줘버리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절없이 빼앗겨버리는 사람. 나에게 주도권이라는 것은 관계의 권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도록이면 정상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시켜나갈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상대에게 모두 빼앗겨버린 것 같은 석원은 중반부에서 후반부 초반까지 휘청휘청 흔들리다가 거의 끝에서 갑자기 확 중심을 잡는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별다를 것도 없는 평온을 되찾았다. 사랑이란 게, 관계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공학적인 측면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보니, 내 생활에 중심을 잡고 온전히 내게 집중하게 되자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나 심적 고통도 덜하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연애 때문에 휘청휘청 불안불안하게 흔들리던 석원이 중심을 잡게 되는 얘기이다. 찰나의 행복에 설레하고, 영원같은 고통에 괴로워했던 석원, 그리고 우리 대부분이 겪은 불안정했던 사랑이 어떻게 성숙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책'과 '글'이 있었다.




"행복했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엔 이제야말로 뭔가를 써야 할 때, 과연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 바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해 보면 알게 될 것을 왜 물어볼까. '필사를 하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나요?' 같은 질문에 내가 결코 대답을 하지 않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묻지 않고 바로 시작을 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썼다. 쓸모가 있든 없든, 똑같은 글이 되풀이되고, 한심한 글밖엔 나오지 않았어도 종일 펜을 놀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그 무엇도 아닌 글이라 해도 그저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에게도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책'과 '글'이다. 예전엔 이것들이 내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지만 지금은 단단하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나를 흔들면 나는 흔들흔들거리며 책을 잡으러 가고, 글을 쓰러 간다. 그렇게 책을 잡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흔들흔들거리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어느새 멈춘다. 그 시절 나에게 '책'이든 '글'이든 그 밖에 무엇이든 나를 몰두하게 해주고, 언제든 좋은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그 무엇인가 있었다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한, 조금 덜 괴로운 연애를 했을까? 그럼 나는 이제 그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행복한 연애는 결코 꿈꾸지 않는다. 아니, 그런 연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울 것을 알면서도 손을 잡고 함께 뛰어들어보자고 하는 것이 연애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행복을 함께 만들어보려 노력하는 것이 연애 아닐까. 나의 다음 연애를 위해 연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게 해준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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