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을 보고
강남역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CCTV 영상 속 피해자의 남자 친구는 주저앉아 오열하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영상을 보는 나도 심장이 벌렁벌렁 떨렸고, 무서웠고, 마음이 아팠는데. 하루 종일 '강남역 묻지 마 살인'이라는 검색어가 1위를 차지했고, 그 검색어가 잘못된 것이라는 많은 기사와 글들을 접했다. '이것은 단순 묻지 마 살인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결국 그녀의 죽음이 '묻지 마'처럼 이유가 없는 살인이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그녀는 왜 죽어야 했을까?
이틀 전에 본 '곡성'이라는 영화가 던진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영화 속 살해당한 피해자들 모두 왜 죽었어야 했을까? 종구의 가족들은 왜 그렇게 처참한 일을 당해야만 했을까. 종구가 최선을 다해서 딸과 가족들을 살리려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처참한 결과를 맞닥뜨려야 했을까. 그리고 감독은 왜 굳이 종구와 효진은 살려뒀을까.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다. 실제로 일어난 강남역 사건도, 영화 속 사건도. 사람이 죽었고, 그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남았다. 그 끔찍한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모두가 생각한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정말 너무 안타깝게도 범인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을 뿐이다. 곡성에서 종구의 가족들이 그랬듯, 효진이 그랬듯, 그 여자분이 죽어야 할 이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 시간에 내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그 피해자가 나였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도대체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악이, 나쁜 인간들이 제멋대로 미끼를 던지고 그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불량 신자이지만 신이 원망스러웠다.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영화 GV 때 이 영화는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얘기했다. 나는 처음엔 이렇게 처참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영화라니,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결국 그렇게 처참한 상황이 됐지만, 종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최선을 다해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이 결과와 상관없이 다 옳았다고 위로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종구는 끝내 살려둔 거라고.
"2시간 40분 동안 고생한 피해자에게 단순 위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어떤 위로를 해야 잘한 위로인지 고민했다. 가신 분보다 남은 분들의 아픔이 더 클 거고, '당신이 죽도록 막고자 하는 애쓰는 모습을 봤고, 그 어느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옳은 것을 다하고자 하는 모습을 봤다. 사단은 났지만 우리는 당신의 노력을 봐 왔기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당신은 옳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종구를 살렸다."
현실은 늘 해피엔딩이 아니다.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가족을 구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사실 현실에선 그렇게 애를 써도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처참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도 순식간에 처참하게 살해되고, 사고를 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당한다. 정말 어이가 없고,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그 억울한 일들을 당한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억울함을 풀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하고 두려울까. 하지만 그들이 했던 일들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음을 위로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 곡성이 그런 강력하고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가볍고 뻔한 위로가 아닌 충분히 괴로워하고 공감하려 하는 위로를 말이다.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은 외지인이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는 모습인데 그 미끼를 어떤 물고기가 물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내가 물게 될지, 나의 가족이 물게 될지, 그 누가 물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모든 피해자들의 처지를, 심정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강남역 사건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살인 사건이 익숙해지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지만) '묻지 마 살인 사건'이라고 넘겨버릴 게 아니라 '남은 사람들'로서 관심을 가지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통해 여성으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몇몇 남성들이 가지고 있을 '여성 혐오'를 나 하나가 어떤 식으로 벗겨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은 할 수 있다. 설사 그게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종구의 마지막 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효진아, 아빠가 다 해결해줄게. 아빠 경찰관이잖아.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해주는 대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