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고
벤의 감정, 벤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묘사되지 않지만 이 소설은 벤의 이야기였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벤이 계속 맴돈다. 벤이 느꼈을 외로움이 습한 이 여름 날 나를 서늘하게 만든다. 그를 외롭게 만든 건 그 누구도 아닌 그의 가족들이었다.
작가조차 그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자신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유일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줬던 존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와의 이별이 얼마큼 힘들었는지, 부모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버려졌을 때 얼마나 절망스럽고 슬펐는지, 그가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해 억울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그에겐 그 어떤 발언할, 표현할 기회를 작가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부터가 참 마음이 아팠다.
가끔 소설을 볼 때 그 속에 존재하는 인물에게 너무 깊은 연민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마치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그래서 그 인물이 지나치게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작가를 원망하곤 한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인물을 만들어냈지만 나는 끝까지 그 인물을 어쩌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한다는 게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실존하지 않는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라지만 이미 태어났는데 어떻게 그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만든단 말인가. 하며 지나친 몰입이 될 때가 있다. 이번 소설 <다섯째 아이>가 그랬다.
이 소설은 계속 헤리엇의 입장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그 반대의 벤의 입장에서 읽어나갔다. 나는 아마도 초반부터 헤리엇이 싫었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헤리엇과 데이비드 부부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마치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던 양 구는 모습들이 얄미웠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벤'이 희생되었다는 생각이 읽으면 읽을수록 강해졌다.
현재의 자신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과하게 큰 집을 샀고, 그 와중에 계획에도 없던 임신을 네 번이나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특히 헤리엇은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마지막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했을 때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괴물 취급한다. 비이성적인 생각이지만 과하게 큰 집을 사고, 관리하고, 그 집에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고, 계획에 없는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경제난에 시달리고 힘겨워하던 헤리엇의 상태 때문에 벤과 같은 상태의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조금만 더 책임감 있게 행동했더라면 조금 덜 욕심부렸더라면 벤이 다른 형제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좀 더 벤에게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어리석은 후회와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 세상 속으로 던져진 것뿐인데 그가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커 보였다. 실제로 벤이 고통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묘사가 된다.
그 아이는 오물로 얼룩진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 애를 욕실로 데려가 구속복을 벗기고 욕탕에 넣어 씻길 때 그녀는 그 애가 공포로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그곳에서 씻길 때 그 애가 항상 의식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 전 두려움에 떨면서도 사람들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유기견을 떠올렸다. 벤은 마치 한 마리의 불쌍한 유기견 같았다. 주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갔다 버리고선 다시 멋대로 다시 찾아와서는 말 안 들으면 다시 갖다 버릴 거야! 하고 협박하면서 쉽게 다루려고 하는,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온몸을 부르르 떠는 가여운 유기견. 헤리엇은 벤을 데려온 이후로 실제 그렇게 대하기도 한다. 마치 강아지를 훈련시키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차라리 헤리엇이 처음부터 가여운 길 잃은 유기견이라고 생각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은 헤리엇이, 다른 사람들이 자꾸 벤을 인간으로 보려고 한 것에서 일어났다. 인간이라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그들의 시선 때문에 벤이 불행을 겪었고, 그 불행이 그의 가족 모두의 불행이 되었다.
결국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꾸는 가정은 겉만 번지르르한,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껍데기를 갖는 것에 불과했다.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남으로 해서 모래로 겨우겨우 쌓은 그들의 현재가, 꿈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들이 말하는 가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가끔 자신의 형제들을 관찰하고 쳐다보고 따라해보는 벤의 행동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없고,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은 차가우며, 그 눈빛의 끝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었던 벤은 이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외롭다. 아니 그의 외로움이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소설이 끝이 난다. 한숨이 터져나왔다. 끝내 벤은 행복해지지 못했구나, 아니 행복해질 수가 없구나.
작가가 <세상 속의 벤>이라는 속편을 썼듯 나도 속편을 쓰고 싶을 정도로 그가 이후에 행복하길 바랐다.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속죄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상상을 해보다가 나도 헤리엇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 상상을 잠시 접었다. 타인의 기대를 나의 기대라고 착각하고, 나의 욕망을 가치라고 착각하는 나도 그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슬프고 기괴했다. 하지만 결코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이 섬뜩했다. 우리는 모두 현실 속에서 또 다른 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결국 문제는 벤이 아니라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