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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괜찮아

혼자하는 일본 나가사키 여행 프롤로그

by DANA
혼자하는 여행이 두려운 당신에게 권하는 일본 나가사키 여행


2016년 12월 초 '나가사키長崎'라는 도시에 그렇게 급작스럽게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랬기에 기대보다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올 수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월요일에 항공권을 사고 화요일에 떠났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나가사키역으로 가는 길

막무가내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바로 '혼자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혼자' 하는 것이 서툴고 여유보다는 눈치보기 바쁜 '초보 혼밥러'이기에 혼자 하는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최근에 그나마 '혼밥'이 조금 익숙해졌다. 직장에 다닐 당시 사람과의 교류가 워낙에 많은 포지션이었기에 점심시간만큼은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일주일에 두어번 있어 혼자 점심먹는 날을 정해 지하철역 한정거장을 걸어가 혼자 밥을 먹고 오곤 했다. (속으로는 '운동삼아' 걷는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나가사키는 천주교가 일본에 처음 들어온 곳으로, 곳곳에 성당 유적이 많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격때문인지, 소통에 문제가 없는 중국과 일본을 자주 간다. 물론, 중국/일본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혼자서는 왠지 이 두 나라도 쉽사리 훌쩍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매년 위시리스트 1순위로 적어두기만 하는 나홀로 여행은 매우 충동적이고도 갑작스럽게 이루게 되었다.


산책길에 만난 예쁜 하늘과 단풍과 소녀

일단 한번 해보고나니, 혼자 하는 여행 좋은 점이 매우 많다. 그리고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카메라라고는 핸드폰 하나 떨렁 들고 같기에, 남편과 같이 갔을 때 만큼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찍는 사진'에는 '나만의 추억'이 담기는 법이다. 대충 찍은 사진 하나에도 그때의 내 감정과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맛있는 밤만쥬 가게도 만났다.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밤만쥬 가게에 쑥 들어가 홀연히(?!) 밤만쥬 하나를 물고 온다던지, 중간중간 피곤하면 호텔에 들러 잠시 쉬다 나온다던지,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여행도 여유로워진다. 무계획이 무대책은 아니다. 타이트한 여행 일정이 없다보니, 호텔에 묵더라도 이 곳에 있는 만큼은 이곳 주민처럼 산책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서울보다 남쪽에 있어 그런지 여행 내내 17도 남짓의 가을날씨였다. 지난번 시즈오카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소도시 여행의 좋은 점은 움직이는 반경이 한정적이다보니 여유롭게 걸어다니기 좋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날씨까지 도와주니, 이번 여행은 '산책'이 테마였다고 뒤늦게 의미를 붙여도 손색없었다.


일본 26성인 순교지 / 니시자카 공원

나가사키에 있는 동안 나의 산책과 사색은 니시자카 공원西坂公園이 책임져 주었다. 기분 내키면 공원에 앉아 멍때리기도 일쑤다.


일본 최초 아치형 다리 메가네바시(眼鏡橋 / 일명 '안경다리')
평화공원 (平和公園 /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자 추모 공원)

물론, 가까이에 위치한 유명하다는 곳은 매일 조금씩 둘러보았다. 나홀로 여행이어도 처음 오는 나가사키라는 곳을 그냥 산책만 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메가네바시 부근의 하트모양 돌을 찾아보세요.
구라바엔(グラバー園 / 글로버 정원)에서는 바닥에 있는 하트모양 돌 말고, 나무 기둥에 있는 하트도 찾아보세요. 안내책자에는 안나와요. :)

나가사키에는 하트모양 돌이 많은 것 같다. 메가네바시眼鏡橋에서도 그렇고, 구라바엔グラバー園 / 글로버 정원에서도 몇개의 하트모양 돌을 찾았다. 인조든 천연이든 하트모양은 기분을 좋게 하는 면이 있다. 남편 생각도 종종나고 말이다.

우연히 구라바엔 모처에서 멀리 보이는 나가사키 해안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 안내를 담당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뭐라고 하시는데 잘 들리지 않아 '에? 에?' 하고 있으니 결국 다가와서 이야기 해주신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 바로 앞에 있는 나무 기둥에 하트모양으로 구멍이 나 있던 것이다. 이것은 천연이라며 사진으로 담아가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코코워크몰 대관람차
나가사키 야경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된 단 한 순간은 야경을 찍을 때가 아니었을까.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인 나가사키인데, 상하이 같이 마천루가 밝히는 야경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처음 야경을 보고는 '이것이 정말 3대 야경...?' 하는 의문이 잠깐 들지만, 가만히 서서 작은 불빛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있자면 불빛마저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혼자 와서 그런지, 이상하게 센치해지는 순간이었다.


노면전차가 예쁘게 보존된 나가사키

나가사키에서는 노면전차 하루 이용권을 500엔에 판매하는데, 굳이 사지 않았다. 한번 승차에 120엔인데, 하루에 적어도 5번은 타야 이득이었다. 하지만 나가사키에서 웬만한 거리는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고 중요한 장소 한 곳까지만 노면전차로 이동하고 나면 이후에는 걸어서 여기저기 이동이 가능했다.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남편과 함께 여행할 때는 조금 걷고는 쉬자고 칭얼댔던 기억이 많다. 기댈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혼자 걸어다니니 의외로 아무생각없이 잘 걷더라.


나가사키 짬뽕도 먹고요
료마커피와 치즈 케이크도 즐기고요

혼자하는 여행이라도 먹는 것에는 매우 충실했다. 유명하다는 식당을 가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순간 제일 먹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여 최선의 선택을 했다. 물론, 호텔과 연결된 쇼핑몰에서 호텔 룸키를 제시하면 할인을 해주거나 서비스를 주는 곳들이 있어 그런 곳들을 자주 가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맛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쇼핑몰에 입점한 곳인 만큼 보통 이상의 맛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완연한 가을 날씨였기에, 커피 한 잔에 바닷가를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는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멍때리고 앉아 있으면 잡생각이 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멍때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고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대부분의 멍때리기는 30분으로 끝내고 만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매일 오후 산책겸 들르던 니시자카공원 고양이와의 조우였다. 조우라기에는 매일 다른 시간에 우연히 들렀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고양이가 나타나곤 했다.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날은 발끝에 잠시 왔다 가고, 둘째날은 내가 앉은 벤치 옆에 올라와 내 옷이며 머리카락 냄새를 맡더니,,,,


셋째날은 내 무릎에서 잠을 잤다. 목에 방울이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성당이나 어딘가에서 키우는 것 같았다. 매일 이 아이를 보러 공원에 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에이...오늘은 없네..'하고 있으면 어느순간 저 멀리서 달려온다. 어찌나 편히 잠을 자던지, 곧 비가 올 것 같아 호텔로 돌아가려던 나를 한시간동안 붙잡아두었다. 너무나도 따뜻했다. 한시간 후에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아 결국 들어다가 옆 자리에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고), 고양이와 서로 체온을 나누는 순간에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다 못해 뜨거워져 울먹대던 순간이 있더랬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 고양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고양이는 사실 자기였다나 뭐라나.... 오글거리지만 사랑스러운 대사라고 생각했다.


3박4일동안 산책같은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 절실히 와닿던 내 성격이나 특징들이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재미있던 건 '역시 난 안정적인 걸 좋아해...배낭여행은 힘들겠어' 하는 생각을 했을 때고, 슬펐던 건 '여전히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뭐 어쩌겠는가...이게 나인것을...

편안히 산책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았고 귀여운 고양이와 만나 뜻밖의 위로를 받아 기뻤던 나가사키였다. 나처럼 초보 '혼트레블러'에게 안성맞춤인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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