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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서는 묘연(貓緣)을 만날지도 몰라요.

나가사키 길고양이들과의 조우

by DANA

일본에는 고양이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길고양이가 많은 동네가 곳곳에 있는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고양이 마을로 유명한 곳들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가사키에서는 고양이 구경을 작정하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찮게 많은 길고양이들과 만났고 나름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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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언급한 적 있는 나가사키 산책코스인 '사루쿠さるく'코스에는 나가사키 골목 곳곳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만나는 코스도 있다. 이 코스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함께 다니며 고양이들을 만나는 코스인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진행하지 않았다. 기간이 맞았다면 아마도 참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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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양이 산책코스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연히 이 페이지를 구경하다가 나가사키의 JR 미치노오道ノ尾역에 고양이 역장이 있다는 글을 보았다. 역사 근처에 떠돌던 길고양인데, 역무실에서 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다가 아예 역사 내에 작은 집을 마련해준 것이다. 나중에 보니 일본 신문에도 나온 적이 있는 고양이이다. 이 고양이가 보고 싶어 졌다.


미치노오역까지는 JR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물론 시내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가격도 더 싼데, 시간은 좀 더 걸리는 편이다. 나가사키역에 머물고 있던 나는 JR로 이동하기로 한다.


티켓 발매기에서 230엔을 누르고 한 장을 구매한다. 그리고는 역 안으로 들어간다.


정확한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지 않은지라 결국 직원에게 어느 플랫폼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바닥에 그려진 녹색 '0'번 플랫폼을 따라가서 타면 된다고 했다. 바닥에 이렇게 친절히 표시가 되어있어 헤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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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으로 가던 중, 무대 같은 곳 정중앙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보고 혹시 인형인가 싶었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불렀더니 눈을 꿈뻑거린다. 졸고 있던 모양이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직원이 알려준 0번 플랫폼으로 갔더니 파란 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는 시간을 모르고 가서 중간에 고양이도 구경하고 천천히 갔는데, 내가 타자마자 문을 닫고 출발했다. 아마도 출발시간을 알았더라면 조급한 마음에 플랫폼에서 졸던 고양이는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겠다.


평일 오전 9시 출근 시간에 나가사키역으로 오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마을로 돌아가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굳이 버스를 타면 되지 나처럼 더 비싼 돈을 주고 JR선을 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치노오역까지는 3 정거장 거리라 10분 정도 가니 바로 도착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썰렁한 역사였다. '어디 갔을까... 그래 지금은 외출 중일 수도 있지...'하는 생각에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보자 싶어 역을 떠나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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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역 앞 공터에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한 마리는 사람을 조금 경계하는 것 같았고 다른 한 마리는 가까이 다가왔다. 가지고 있던 몽프티 사료를 조금 주었다. 일본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있지만, 이렇게 주고 말았다. 결례였다면 죄송한 마음이다. 그래도 너무나 잘 먹는 모습에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기다리기가 애매하여 다시 나가사키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플랫폼에서 나가사키역을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고양이 역장의 작은 집을 보았다. 아마도 미치노오역에 막 도착했을 때는 고양이 어디 있나 둘러보느라 이 집은 보지 못했나 보다. 집에는 '역장실'이라고 적혀있었고, 크게 "JR"이라고 쓰여있었다. 영락없는 JR선 직원의 집이었다. 나중에 기사를 다시 보니 낮에는 주로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아마도 동네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었나 보다. 고양이 역장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미치노오역까지 가는 길에 이미 많은 고양이를 만나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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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가사키역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 전에 시간이 남아 산책 삼아 시니카자공원에서 향했다. 첫날 우연히 만났던 고양이가 둘째 날도 저 멀리서 어슬렁 다가왔다. 둘째 날은 이렇게 내 냄새를 샅샅이 맡았다. 옷 냄새도 맡고, 머리카락 냄새도 맡고, 그러더니 내가 앉은 벤치 근처 풀밭에 조용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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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고 앉아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고양이인 줄 알고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제 고양이는 아니니 마음껏 찍으세요.'라고 대답했다. 너무나도 귀여운 녀석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인데 이 공원에 올 때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아이였다.


셋째 날은 저 멀리서 뛰어와 내 옆자리에 앉아있더니 어느 순간 무릎 위로 올라온다. 가방 때문에 편하게 앉지 못하는 것 같아 가방을 옆으로 치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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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코트 안으로 머리를 부벼넣는다. 저 날은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따뜻한 곳을 찾는다고 저랬나 보다. 편한 자세를 찾았는지 어느새 미동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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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곧 남은 긴장도 풀고 머리를 떨구며 떡실신. 한 시간을 저렇게 잠을 잤다. 곧 비가 올 것 같아 들어가야 했고 야옹이를 데려가는 것도 아닌 이상 계속 정을 주면 내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흔들어 깨웠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몇 번을 쓰담 쓰담하다가 마음을 먹고 야옹이를 들어서 옆자리에 내려두었다.


원래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 같다. 공원에 들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 배에 붙인 핫팩이 따뜻한 것을 알고 저렇게 누워 잤다고 해도 상관없다. 고양이가 누워있는 동안 나도 너무 따뜻했다.

일본에는 곳곳에서 예쁜 길고양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집 주변에서 보던 길냥이들처럼 사람을 피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사람 손을 많이 탄 고양이도 자주 보았다.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생각지 못한 묘연을 만나고 뜻밖의 위로도 받을 수 있다. 따뜻했다.


p.s) 나가사키 니시자카 공원에 들렀다가 이 고양이를 보시면, 대신 안부라도 전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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