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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Sep 14. 2019

통대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기-승-전-멘탈

  이 글을 쓰려고 자리를 잡고 보니, '통대에서 당연히 통역을 배우지 뭐 특별한 것이 있다고 장황하게 글로 쓰려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통역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들어 일단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대 통대가 위치한 이대 국제교육관

 당연히 통역을 배운다. 이대 통대는 통역학과와 번역학과가 나뉘어 있어 통역과는 주로 통역 수업 중심에 번역 수업이 더해지고, 번역과는 번역 수업 중심에 통역 수업이 더해진다. 통역학과 소속인 본인은 통역학과의 수업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본다. 첫 1년, 즉 1학기와 2학기에는 순차통역과 문장 구역 수업을 바탕으로 통역 연습을 한다. 하지만 통번역대학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통역 수업만 듣지는 않는다. 통역도 일단 언어가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A언어(한국어)와 B언어(외국어) 심화 수업을 듣는다. 통역 수업들 가운데 이 두 수업은 약간 안식처 같은 의미가 있다. 통역 수업에서만큼 철저한 크리틱이 없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다.   


학원 동기들과의 만남

  통역 수업은 대개 교수님이 준비해 오시는 텍스트로 돌아가며 통역 연습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배경 지식 습득을 위한 발표 시간도 더해지고, 학생들이 돌아가며 연사와 통역사가 되는 시간도 있다. 하지만 한 반에 학생이 10인 것을 생각하면 사실 수업 중에 하는 통역만으로는 연습이 턱없이 부족하다. 많으면 3번, 대개는 2번 정도 차례가 돌아오고 수업이 마무리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터디를 조직한다. 그래서 학기 초 여유로워 보이는 시간표가 곧 스터디와 과제 시간으로 채워져 빡빡한 일과가 완성된다. 


국제교육관 12층에서 바라본 ECC

  3학기, 4학기에는 통역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동시통역 수업이 시작된다. 배우기 전에는 대체 동시통역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며 그저 막막하기만 한데, 4학기에 다니고 있는 지금 보면 뭐... 어떻게든 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연습하다 보면 자신만의 요령이나 방식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순차통역 수업에서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동시통역 수업에서는 영상이나 녹음을 들으며 통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정말 실전 같은 기분도 많이 들고 평소 듣기만 했을 때는 그다지 빠른 어속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동시통역으로 하려고 하면 너무 빨리 느껴져 절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시통역 수업만큼 내가 정말 뭔가 새로운 것을 연마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수업도 없다. 동시통역이야말로 통역번대학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수업이 아닐까. 


통역 수업에서 통역사 역할보다 더 긴장되는 연사 역할 

  직접적인 통역 수업 이외에, 통번역 연구나 통번역 교수법과 같이 학술 연구 쪽 수업도 선택 과목에 있다. 일찌감치 박사 과정을 염두에 둔 사람들이 많이 듣는 수업이다. 꼭 박사과정이 아니더라도 통번역에 대해 보다 학문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통번역은 학문이 아니라 기능이나 기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는 사람 나름인 것 같다. 그리고 번역툴인 트라도스 실습수업도 있다. 실제로 번역 에이전시에서 트라도스 활용 가능 여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 트라도스 툴의 기능을 배우는 시간인데, 너무 다양한 기능이 있다 보니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조금만 딴생각을 하면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를 놓치기 때문에 통역만큼이나 집중을 해야 한다. 때로 '아... 이 기능 찾느라 고생할 시간에 그냥 내가 번역을 하고 말겠어...'라는 푸념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고 정형화된 문서를 번역할 때는 번역 효율이 상당히 올라갈 것 같다. 


애용하는 통역 테이킹용 노트

  마지막 학기에 듣는 모의 국제회의 수업은 통역 실습인 동시에, 실질적인 기계 조작과 협업을 배울 수 있다. 모든 언어 학생들이 다 같이 수업을 듣는다. 연사를 초청하거나 모의 국제회의를 조직해 동시통역으로 투입되는 연습을 한다. 이때 피봇이 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만약 연사가 중국인이고 다양한 언어권의 청중이 모여 있을 경우, 먼저 한중 통역사가 연사의 말을 한국어로 동시통역하고 다른 언어  통역사들은 이 한국어를 그들의 외국어로 통역한다. 이때 한중 통역사가 피봇이 된다. 피봇의 통역이 엉망이면 다른 통역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담감도 크고 그만큼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갑자기 연사가 다른 언어권인 사람으로 바뀔 경우는 피봇 채널을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기계 조작도 손에 익혀두어야 한다. 요즘은 저절로 변경되는 통역 시스템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아날로그 시스템도 많다.

    

실제 현장에서 동시통역 들어보기 

  위와 같이 다양한 통역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저 수업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그나마 가장 빨리 나의 향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멘탈관리. 입시 기간 1년에 통대 2년, 총 3년 동안 매일 같이 수업에서, 스터디에서, 과제에서 내 통역에 대한 철저한 비평과 지적을 듣다 보면, 어느새 내가 기억하고 고쳐야 할 것과 금세 잊어버려야 할 것이 저절로 여과가 된다. 성격에 따라 이 크리틱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나는 아직 울어본 적은 없지만, 우는 친구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크리틱 해주는 동기들도 나 본인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내가 한 통역에 대한 오류를 지적해주는 것인데, 그 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왜 다들 나를 이렇게나 미워하나... 난 대체 통대엔 어떻게 들어왔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설레고도 떨리는 통역실

  내가 다른 동기의 통역에 크리틱을 해줄 때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류로 적어놨던 것보다 더 적게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통역을 하다 보니, 당장 마음의 상처를 줄이겠다고 실수를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 정말 동기에게 좋은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시간을 거쳐 4학기쯤 되면 오히려 실수를 그냥 넘어가고 잘했다고 해주는 것이 마냥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 마음이 불편하라도 더 많은 청중 앞에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우리끼리 고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한 번의 통역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 준비를 하고 얼마나 철저히 멘탈와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 이것이 정말 통대에서 배우는 가장 크고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그냥 단순히 외국어를 할 줄 알면 통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통역은 복잡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가며 몸과 머리로 통역을 익혀가는 시간이 바로 통대에서의 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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